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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년 전 오늘(14일), 네덜란드서 을사늑약 무효 외치다 분노 속에 숨 거둔 이준 열사

1907년 7월 14일,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이었던 이준 열사는 네덜란드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인사이트이준 열사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사이트] 성동권 기자 = 지금으로부터 113년 전인 1907년 7월 14일, 대한제국의 외교관이자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이었던 이준은 네덜란드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1907년, 그는 을사늑약이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임을 폭로하고 일제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파견됐다.


이들은 세계 평화회의 의장에게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전하고 평화회의장에 한국 대표로서 공식적으로 참석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본 대표와 영국 대표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일제의 한국 침략을 폭로, 규탄하고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공고사(控告詞)를 작성해 평화회의 의장과 각국 대표에게 전달했다. 또한 신문에도 이를 공표해 국제여론을 환기시키고자 노력했다.


인사이트헤이그에 파견된 이준, 이상설, 이위종


인사이트이준 열사와 헤이그 회의장 모습


당시 언론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과 달리, 열강 대표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은 조그만 호텔방으로 쓸쓸히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나라를 잃었다는 슬픔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격분한 이준은 7월 14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시 그의 임종을 지킨 이위종은 "이준 선생은 의식을 잃은 듯 잠들어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이 나라를 구해주소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탈하려 합니다'라며 가슴을 쥐어뜯다 숨을 거두었다"라고 전했다.


인사이트Instagram 'seokyoungduk'


인사이트이준 열사 묘비 / 문화재청 홈페이지


광복을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이준 열사는 순국 3일 뒤 헤이그 공동묘지에 임시 안장되었으며, 헤이그 시는 오늘을 '이준 평화의 날'로 정했다.


이후 이준 열사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됐다.


1963년 10월 4일 헤이그에서 열사의 유해를 모셔 국민장을 거행하고, 서울 강북구 수유리 묘소에 안장되었다. 1964년에는 장충단공원에 동상이 건립되었다.


100년이 넘는 까마득한 시간이 흐른 현재, 나라를 잃은 슬픔으로 목숨까지 잃었던 이준 열사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