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일렉트릭·일진전기·효성중공업·LS일렉트릭 등 전력기기 업체들이 한국전력공사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입찰 담합 혐의로 법정에 섰다. 검찰이 문제 삼은 입찰은 2015년 3월부터 2022년 9월까지 한전이 발주한 170kV GIS 145건이다. 검찰은 전체 담합 규모를 약 6776억원, 부당이득을 최소 1600억원으로 산정했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HD현대일렉트릭·일진전기·LS일렉트릭·효성중공업등 전력기기 업체와 임직원 사건의 첫 공판을 열었다.
GIS는 발전소와 변전소 전력망에 쓰이는 고압 전력 설비다. 전기가 과하게 흐르거나 사고가 났을 때 전류를 차단하고 절연하는 장치다. 한전 발주 물량은 계약 규모가 크고 참여 업체가 제한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공정거래당국과 검찰은 이 구조에서 낙찰 예정자와 투찰 가격이 사전에 조율됐는지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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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이들 업체가 낙찰 예정자와 투찰 가격을 사전에 정해 경쟁을 제한했다고 보고 있다. 대기업군이 낙찰 순번과 가격을 조율하고, 중소기업군은 한국중전기사업협동조합 등을 통해 일정 물량을 배정받는 구조였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담합 기간 낙찰률은 평균 96%를 웃돈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앞서 이 사건을 낙찰 예정자 선정과 가격 합의가 결합한 입찰 담합으로 판단했다. 과징금은 총 391억원이다. 효성중공업이 약 112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일진전기 약 75억원, LS일렉트릭 약 72억원, HD현대일렉트릭 약 67억원 순이었다. 공정위는 가담 정도 등을 고려해 일부 사업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번 재판은 전력기기 업계가 AI 데이터센터와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로 호황을 맞은 시점에 시작됐다.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일진전기 모두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 수혜를 받는 업체들이다. 시장에서는 수주와 실적 개선이 먼저 가격에 반영되고 있지만, 법정에서는 과거 한전 입찰 구조와 낙찰 가격 조율 여부가 다시 다뤄지게 됐다.
업체들은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효성중공업 측은 국내 GIS 시장 선두 사업자로 담합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담합 기간 시장 점유율과 계약 금액이 줄었다는 점도 검찰 주장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이 제시한 기본 합의에 대해서는 시점과 장소, 방식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다른 피고인들도 개별 입찰마다 낙찰자와 가격을 미리 정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입찰별 조건과 참여자가 달랐고, 일부 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는 취지다. 검찰은 145건의 입찰을 7년간 이어진 하나의 합의 구조에 따른 단일 범죄로 보고 있다.
이날 법정에서는 보석 청구를 둘러싼 공방도 있었다. 효성중공업 측 피고인 변호인은 장기간 수사로 증거가 확보돼 증거 인멸 우려가 낮다고 주장했다. 일진전기 측 피고인도 공정위 조사 단계부터 성실히 임했다며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담합 구조와 가담 정도를 둘러싼 진술이 핵심이라며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증인신문도 시작됐다. 검찰이 담합 제안 과정의 핵심 인물로 지목한 중소업체 동남의 실무 담당자가 법정에 나왔다. 이 증인은 공정위와 검찰 조사에서 여러 입찰의 담합 사실을 인정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중소업체들이 대기업과의 경쟁을 피하려는 과정에서 담합에 참여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
재판의 쟁점은 담합 성립 여부와 개별 피고인의 가담 정도다. 공정위 조사 자료와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의 증거능력도 다뤄진다. 법정에서는 대기업군이 물량 배분을 주도했는지, 중소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입찰 구조에 들어왔는지가 다뤄진다.
형사재판 결과는 별도로 진행 중인 과징금 취소 행정소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전이 손해배상 청구에 나서면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담합 구조와 가담 정도가 후속 소송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재판부는 일부 피고인에 대한 심리를 분리하고 실무자 증인신문을 이어가기로 했다. 다음 기일은 오는 20일이다. 법정에서는 한전 GIS 입찰 145건의 낙찰 순번, 투찰 가격, 물량 배분 경위가 순차적으로 다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