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기 구축함 KDDX 수주전의 분기점이 5월 15일로 좁혀지고 있다. 한화오션의 KDDX 배치Ⅱ 개념설계 단독 응찰보다 더 직접적인 변수는 배치Ⅰ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제안서 제출 여부다. HD현대중공업은 배치Ⅰ 기본설계 수행사로 본사업 경쟁에 나서야 하지만, 기본설계 자료 제공을 둘러싼 가처분 소송과 보안감점 변수를 동시에 안고 있다.
제안서를 내면 감점과 소송 변수를 안은 채 평가를 받아야 하고, 내지 않으면 재공고와 사업 지연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KDDX는 6000t급 한국형 이지스함 6척을 국내 기술로 확보하는 사업이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의결 기준 총사업비는 7조439억원이다. 사업은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배치Ⅰ에서는 대우조선해양, 현 한화오션이 개념설계를 맡았고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수행했다.
사진제공=HD현대
방위사업청은 지난 2월 제173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기본계획을 의결하고, 사업자 선정 방식을 경쟁입찰로 정했다. 방사청은 다음달(5월) 15일까지 제안서를 받을 예정이다. 한 업체라도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재공고를 통해 다시 제안서를 받아야 한다. 재공고에서도 한 업체만 입찰에 응하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HD현대중공업이 직면한 첫 변수는 가처분 소송이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이 배포한 제안요청서에 첨부된 기본설계 자료 170건 중 일부가 영업기밀에 해당한다며 지난달 24일 방사청을 상대로 영업비밀침해금지 등 가처분을 냈다. 처음에는 12개 항목을 공개 불가 대상으로 지정했고, 소송 과정에서 이를 14개 항목으로 늘렸다.
HD현대중공업은 법정에서 "한화오션이 방사청에 요청한 자료는 공정성과 영업기밀에 직결되는 자료일 수 있는데도 방사청이 자료 대부분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제안서 작성에 필요한 자료만 제공했고, 원가 자료 등 경쟁업체의 경영상 기밀은 제외했다는 취지다.
방사청은 반대 입장이다. 방사청은 계약상대자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출한 노하우와 제반 자료에 관한 권리가 국가에 귀속된다는 용역 계약특수조건 표준 예규를 근거로 들었다. 기본설계 산출물은 국가가 활용할 수 있고, HD현대중공업이 자료 제공 금지를 표시할 권한이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0부는 2회 심문기일을 진행하고 심문을 종결했다. 제안서 제출 시한이 5월 중순인 만큼 법원 결정도 그 전에 나올 가능성이 거론된다.
KDDX 형상 및 주요 특성. [사진=방사청]
법원이 HD현대중공업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한화오션이 제공받은 자료의 활용 범위와 제안서 작성 방식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반대로 기각되면 방사청의 경쟁입찰 절차는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정이 늦어질 경우 양사는 법적 불확실성을 안은 채 제안서 제출 여부와 작성 범위를 판단해야 한다.
보안감점도 남아 있다. HD현대중공업 임직원 9명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이 진행한 KDDX 개념설계도 등 군사기밀을 촬영해 공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22년 11월 8명, 2023년 12월 나머지 1명까지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방사청은 지난해 내부 법리 재검토를 거쳐 2022년 확정 사건과 2023년 확정 사건을 분리해 감점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최종 유죄 선고 사건을 기준으로 하면 HD현대중공업의 벌점 적용 기한은 오는 12월 6일까지이며, 감점 폭은 1.2점이다.
감점 1.2점이 최종 순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는 전체 평가 배점과 양사 점수 차가 공개돼야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양사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를 두고 맞붙는 지명경쟁 구도에서는 작은 점수 차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으로서는 기본설계 수행사라는 이점을 갖고도 보안감점과 자료 공유 소송을 함께 설명해야 하는 처지다.
제안서를 내지 않는 선택도 부담스럽다. 방사청 절차상 한 업체라도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재공고가 불가피하다. KDDX는 이미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둘러싸고 장기간 표류해 왔다. HD현대중공업이 제안서를 내지 않으면 방사청의 자료 제공 절차를 문제 삼는 명분은 유지할 수 있지만, '사업 일정 지연의 원인 제공자'라는 시선이 따라붙을 수 있다.
다산정약용함 / HD현대중공업
사업비 증액 가능성은 HD현대중공업에 더 불편한 압박이다. KDDX 사업자 선정이 올해도 무산될 경우 최초 6500억원 수준이던 선도함 건조 사업비는 올해 9천억원 안팎으로 오르고, 내년에는 1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건조 비용이 2천억~3천억원 더 늘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HD현대중공업이 제안서를 내지 않거나, 보안감점·자료 제공 문제를 둘러싼 추가 이의 제기로 일정이 다시 밀리면 '국책 사업 지연'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기본설계 수행사라는 지위가 강점인 동시에, 사업 지연 논란 앞에서는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한화오션은 별도의 전선에서도 먼저 움직였다. KDDX 배치Ⅱ 개념설계 입찰은 지난 10일과 20일 두 차례 진행됐고, 한화오션만 제안서를 냈다. HD현대중공업은 두 차례 모두 참여하지 않았다. 현행 규정상 두 차례 유찰 뒤 단독 응찰 업체와 수의계약 체결이 가능해 한화오션이 배치Ⅱ 개념설계를 맡을 가능성이 커졌다.
HD현대중공업은 배치Ⅱ 개념설계 불참이 사업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개념설계는 사업화 이전 단계로 그동안에도 사업 여건에 따라 참여 여부를 달리 판단해왔다"며 "사업화가 결정된다면 여러 여건을 검토해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치Ⅱ 개념설계와 배치Ⅰ 본사업 경쟁을 분리해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먼저 결론이 필요한 절차는 배치Ⅰ이다. 방사청은 5월 15일까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제안서를 받을 예정이다. HD현대중공업은 배치Ⅰ 기본설계 수행사지만, 제안서 제출 전 가처분 결정과 보안감점 적용 여부를 함께 봐야 한다. 한화오션의 배치Ⅱ 단독 응찰과 별개로, KDDX 사업자 선정의 1차 분기점은 배치Ⅰ 제안서 제출 시한에 놓여 있다.
HD현대중공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