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상법 개정으로 자본시장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는 사이, 효성그룹 주요 상장 계열사들이 정관 변경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렸다. 이사 임기 조정, 이사회 정원 축소, 이사 자격요건 신설이 골자다.
정부와 국회가 일반주주와 독립이사의 발언권을 제도적으로 넓히는 방향으로 가는 시점에, 효성은 이사회의 규모와 진입 문턱을 동시에 손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2025년 7월 개정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독립이사 선임 비율 확대와 감사위원 선·해임 시 3%룰 강화 등을 담았고, 같은 해 9월 개정은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반영했다.
논란은 세 대목에서 불거진다. 효성 계열사들은 이사 임기를 기존 2년에서 3년 이내로 조정하고, 이사회 정원 상한을 기존 16명에서 7명 또는 9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효성 계열사 근무 경력, 현직 이사 추천, 동종업계 경력, 특정 분야 박사학위, 전문자격 보유 등을 이사 자격요건으로 명문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점이 논란을 낳고 있다. 임기가 길어지면 매년 선임되는 이사 수 자체가 줄고, 임기를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게 되면 이른바 '시차임기제'가 가능해져 집중투표제의 실효성이 반감될 수 있어서다. 정원이 줄어드는데 자격요건까지 신설되면, 소수주주가 후보를 밀어 넣을 공간은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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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정관 변경안에 따르면 HS효성·HS효성첨단소재는 이사회 상한을 7명 이내로, 효성·효성티엔씨·효성중공업·효성화학은 9명 이하로 조정한다. 문제는 현재 이사 수다. HS효성은 현재도 이사가 7명, 효성과 효성중공업은 9명으로, 변경 예정 정원과 이미 같다.
상한이 현재 인원과 일치하면 소수주주가 추가 후보를 내밀 자리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이에 감사위원회, 독립이사후보추천위원회, ESG경영위원회, 보상위원회 등 이사회 내 위원회 운영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타이밍이 공교롭다. 정부는 2025년 7월 개정 상법으로 주주 보호와 이사회 견제 기능 강화를 제도화했고, 2025년 9월에는 대규모 상장사가 정관으로 집중투표를 배제하지 못하도록 개정했다. 감사위원회 위원 중 분리선출 대상도 최소 1명에서 2명으로 늘렸다.
9월 개정 상법은 2026년 9월 10일 시행된다. 대주주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구조가 완화됐다. 일반주주와 독립이사의 공간을 넓히겠다는 시그널이 담겨있다는 게 시장의 해석이었다.
효성은 선을 그었다. 회사 측은 "정관 개정 목적은 이사회 구성의 적정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해 이사 정원 조정에 따른 조항 변경과 이사 자격 요건 규정을 신설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반주주의 이사 추천·선임 가능성이 좁아질 수 있다는 외부 해석에 대해서는 이사 정원을 9인 이하로 변경하여도 사외이사의 비율요건은 유지돼 이사회의 독립성에는 문제가 없으며, 그동안 이사 수를 9명으로 유지해왔기에 실제 변화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원 숫자만 놓고 이사회 독립성이 곧바로 훼손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효성의 설명은 9인 이하 체제를 전제로 한 해명에 가깝다. HS효성·HS효성첨단소재는 상한이 7명 이내로 조정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별도 설명은 없었다.
사진제공=효성
효성이 말하는 건 현재 구조의 실질 변화가 크지 않다는 것이고, 외부가 문제 삼는 건 정원 상한이 현원과 같아진 상태에서 자격요건 문턱까지 생기면 시간이 갈수록 소수주주의 접근 가능성이 더 좁아진다는 점이다.
이번 주총 안건의 본질은 앞으로 효성 이사회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채울 것이냐의 문제다. 조현준 회장의 의중이 공개 확인된 건 아니다. 그러나 새 상법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는 이 시점에 효성이 이사회 진입 조건을 손보기로 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이 이 안건을 예민하게 읽는 이유를 이미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