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챗봇과의 대화를 선호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10대 청소년 3명 중 1명이 진지한 대화가 필요할 때 사람보다 AI를 선택한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 11일 국제 의학 학술지 '영국의학저널(The BMJ)'이 최근 크리스마스 특집호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챗GPT나 클로드 같은 생성형 AI 챗봇이 단순한 정보 검색 도구를 넘어 정서적 대화 상대로 활용되고 있는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수전 셸머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아동보건연구소 부교수와 매튜 누어 막스플랑크-UCL 계산정신의학 및 노화 연구센터 박사는 공동 기고문을 통해 "인간 같은 공감 능력이나 배려심이 전혀 없는 존재와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세대를 목격하고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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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AI 의존 현상의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외로움의 유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미국 공중보건총감은 외로움을 흡연이나 비만과 동등한 수준의 공중보건 위협으로 공식 규정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성인 절반에 가까운 2590만 명이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10명 중 1명은 만성적인 고독감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사회적 고립감이 사람들을 AI 챗봇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챗GPT의 주간 활성 사용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약 8억 100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상당수가 치료나 동반자 목적으로 AI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치관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층에서 AI 의존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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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대의 3분의 1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해 AI 친구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만족도 조사 결과입니다. 10대 이용자 10명 중 1명은 사람과의 대화보다 AI와의 대화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3명 중 1명은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람보다 AI 친구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AI 챗봇의 접근성과 즉각적인 위로 제공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AI는 상대방의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관계를 조율하는 '관계적 조율(relational attunement)'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껍데기뿐인 공감에 익숙해질 경우 실제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해결 능력이나 깊은 유대감 형성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임상 현장에서의 변화도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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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나 불안 등 정신적 문제를 겪는 환자를 진료할 때 '문제적 챗봇 사용'을 새로운 환경적 위험 요인으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셸머딘 박사는 "특히 외로움이 깊어지는 연말연시에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챗봇 사용 습관을 부드럽게 물어봐야 한다"며 "강박적인 사용 패턴이나 정서적 의존도가 확인될 경우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연구진은 "AI가 외로움을 덜어주는 도구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웰빙을 위해서는 얄팍한 참여 지표보다 인간 본연의 사회적 연결을 회복하는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