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8일(월)

40대 남성, 8일간 '셀프 감금'...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에 '6억대 골드바' 뺏겼다

지난달 17일 오후 3시, 직장에서 근무하던 40대 남성 A씨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열흘간 이어진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7일 문화일보에 따르면 인천 부평경찰서는 6억 2,000만 원 상당의 금괴를 가로챈 보이스피싱 조직의 2차 수거책을 맡은 30대 남성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발신자는 자신을 '대검찰청 사무장'이라고 소개하며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돼 등기를 보냈는데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A씨가 "못 받았다"고 답하자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곧이어 다른 발신자가 '대검찰청 검사'를 사칭하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들은 "계좌가 범죄와 관계없다는 피해자 입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금융감독원의 출입 허가증을 받아야 하니 휴대전화와 유심칩을 새로 구입하고 텔레그램으로 보내는 원격조종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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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직원이라고 소개한 또 다른 남성은 "보호관찰을 받아야 하는데 처분을 임시로 해주겠으니 호텔로 들어가라"고 명령했습니다.


A씨는 당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호텔과 에어비앤비 숙소 4곳에서 번갈아 가며 투숙해야 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A씨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구속된다"며 협박했고, A씨 휴대전화에 설치된 앱을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습니다.


이들은 A씨가 이동할 때마다 "허락 없이 어디에 가느냐"며 압박을 가했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사진=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사진=인사이트


조직원들은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자산을 국가코드로 등록해야 한다"며 "현금보다 골드바가 처리가 빠르니 골드바를 구매해서 전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계속된 압박에 속은 A씨는 지난달 21∼28일 6차례에 걸쳐 총 6억 2,000만 원 상당의 골드바를 구매해 보이스피싱 조직 수거책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범행 조직은 매번 경기 수원 영통역, 경기 안산 사리역, 인천 부평역, 인천 경인교대역, 서울 신촌·대방역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범행을 지속했습니다.


A씨는 골드바를 6번째로 전달한 28일에야 자신이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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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2억 원을 빌려준 누나가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직접 동생의 숙소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에야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다"며 스스로를 자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천 부평경찰서는 피해 액수가 크고 추가 범행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강력팀 형사 등 20명으로 수사전담반을 구성했습니다.


경찰은 추적 수사 끝에 1차 수거책인 60대 남성과 2차 수거책인 30대 남성 B씨 등 2명을 검거했습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른바 '던지기' 방식으로 지정한 장소에 골드바를 가져다 놓았고 이후 행방은 모른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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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3차 수거책 등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들도 검거하기 위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으며, A씨와 유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시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4조 원을 넘어섰으며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으로 '셀프감금'까지 당한 피해자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며 "신분증이나 서류까지 보여주면서 공신력 있는 기관을 사칭하니 범죄에 연루됐다는 착각에 빠져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수사관들은 신분 노출을 최소화하는 만큼 먼저 신분을 노출하고 각종 요구를 하는 경우는 보이스피싱을 의심해야 한다"며 "계속되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시민들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