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서 고립된 사람을 구하려다 순직한 해양경찰관 이재석(34) 경사의 사망 사고를 둘러싸고 당시 인천해양경찰서장과 영흥파출소장이 조직적으로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광진 전 인천해경서장 / 인천해양경찰서
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실이 검찰로부터 받은 공소장에 따르면, 이광진 전 인천해경서장은 이 경사 실종 당시 영흥파출소 팀장 A 경위로부터 '2인 1조 순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고받았습니다.
이 전 서장은 인명 사고와 직결된 근무 규정 위반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해경의 부실 대응에 대한 책임 추궁이 이뤄지고, 경무관 승진을 앞둔 자신에게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 전 서장은 교묘한 논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경사가 드론업체 직원의 전화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사실을 근거로 '구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이 아니라 '확인차' 출동한 것이어서 2인 순찰 원칙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 전 서장은 여론 조작에도 나섰습니다. 이 경사가 구명조끼를 고립자에게 벗어주던 희생적인 장면만 부각해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인천해경서 홍보계장에게 해당 영상을 편집해 언론에 배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이 경사가 홀로 출동한 상황을 지적하는 보도가 계속되자, 이 전 서장은 홍보계장에게 '설명자료를 준비하라'고 추가 지시했습니다.
'이재석 경사 순직 사건' 관련 담당 팀장인 A 경위가 22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돌고래전망대에서 유족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고 있다.2025.9.22 / 뉴스1
당시 홍보계장은 "규칙을 따르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해야 한다"며 "확인차 나간 것일 뿐 구조 신고가 들어와 나간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장난이 될 수 있어 확실히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 서장은 "홍보계장이 오히려 말장난하는 것 같다"며 의견을 묵살하고, 홍보계장이 작성한 설명자료를 언론에 배포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은폐 작업은 조직 전체로 확산됐습니다. 이 전 서장은 영흥파출소 소속 직원들이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A 경위에게 전화해 "부정적인 말은 절대 쓰면 안 되고 직원들 입단속을 잘 시켜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유족에 대한 압박이었습니다. 이 전 서장은 이 경사 유족에게 "언론사들이 붙을 거니까 거리를 두고 이 경사 이야기를 아껴줬으면 좋겠다"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언론 아니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전 서장은 당시 영흥파출소장에게도 "이 경사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함구령을 내렸고, 파출소장은 직원들을 불러 해경 비위 사실을 외부에 말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사진 제공 = 인천해양경찰서
인천지검 해경 순직 사건 수사팀은 이러한 조직적 은폐 시도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 등 혐의로 이 전 서장과 전 영흥파출소장을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이들의 첫 재판은 다음 달 8일 오전 9시 50분 인천지법 320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업무상과실치사, 직무유기, 공전자기록위작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영흥파출소 전 팀장 A 경위도 함께 재판을 받게 됩니다.
한편, 이재석 경사는 지난 9월 11일 오전 2시 7분께 "갯벌에 사람이 앉아 있다"는 드론 순찰 업체의 신고를 받고 홀로 출동했다가 실종됐으며, 6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