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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위안부' 학살 사실을 증명해줄 영상이 최초 공개되면서 故 김학순 할머니의 이야기가 재조명된다.
1921년 길림 출생인 김학순 할머니는 갓난아기일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재혼으로 평양에 있는 기생집 수양딸로 보내졌다.
김학순 할머니는 그곳에 먼저 와 있던 다른 양딸과 함께 일제강점기 시절 기생을 양성하기 위해 노래와 춤을 가르치는 권번에 다녔다.
하지만 김학순 할머니는 권번을 졸업하고도 기생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연합뉴스
결국 1941년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양아버지를 따라 김학순 할머니는 북경으로 떠났다.
북경에 도착하자 한 일본 장교는 양아버지를 '스파이' 취급하며 데려간 후, 김학순 할머니를 따로 다른 집으로 끌고 갔다.
김학순 할머니가 끌려간 곳은 군인들의 성욕을 해결하는 위안소였고, 그곳에는 조선인 여자가 3명이 더 있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연합뉴스
김학순 할머니는 "처음에는 군인들이 돈을 내는지 전혀 몰랐는데 그중 한 명이 '사병은 1원 50전, 장교들이 긴 밤 자는데는 8원을 우리에게 내야 한다'고 말해줬다"며 "그러나 나는 위안부를 그만둘 때까지 한 번도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학순 할머니는 생리를 할 때에도 어김없이 군인을 받아야 했다.
김학순 할머니는 "군의관에게 미리 받아두었던 솜을 말아서 피가 새 나오지 않게 깊이 넣고 군인을 받았다"며 "나중에는 솜이 나오지 않아 고생할 때도 있었다"고 전해 분노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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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김학순 할머니는 마흔 살은 돼 보이는 조선인 남자를 만났다. 그는 군인들이 없는 틈을 타 몰래 들어와 김 할머니를 강간하고 가려 했다.
김학순 할머니는 "나갈 때 날 좀 데리고 나가줘요"라며 "그냥 가면 소리 지르겠다"고 말해 겨우겨우 위안소를 빠져나왔다.
일본군에 끌려간 지 넉 달만에 탈출한 김학순 할머니는 중국을 떠돌며 열아홉 살에 첫 딸을 낳았고 2년 뒤에는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남편은 김학순 할머니에게 "군인들한테 갈보짓 한 더러운 년"이라며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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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故 김학순 할머니는 국내 거주자 중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한국에서 위안부 운동이 시작되는 동기가 됐을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외에서 활발한 강연활동을 벌이다가 1997년 12월 눈 감았다.
김한솔 기자 hansol@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