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수)

"아들 못낳았다"며 이혼당하고 요양원서 쓸쓸히 떠난 조선의 '마지막 세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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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와 줄리아 리 / 연합뉴스


[인사이트] 이별님 기자 =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빈 줄리아 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4세의 나이로 사망한 줄리아 리(본명 줄리아 멀록)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李玖)의 전 부인이다.


6일 중앙일보는 이구의 9촌 조카 이남주 전 성심여대 음악과 교수의 말을 인용해 줄리아 리가 지난달 26일 미국 하와이 할레나니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이 전 교수는 "줄리아 리가 생전에 한국에 묻히길 바랐는데, 입양한 딸이 화장한 뒤 유해를 태평양 바다에 뿌렸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는 1958년 미국 뉴욕의 건축가 이오 밍 페이의 사무실에서 이구와 처음으로 만났다.


인사이트시아버지 영친왕과 시어머니 이방자 여사와 함께 있는 줄리아 리 / 연합뉴스


페이의 사무실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했던 줄리아는 동료 중에서도 독특한 동양 청년 이구를 발견했다.


이구는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자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의 유일한 생육으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으로 불렸다.


나이는 줄리아가 8살 더 많았지만 동양인의 몸으로 낯선 뉴욕 땅을 전전하던 이구에게 줄리아는 연정을 느끼게 됐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혼인한 후 시어머니 이방자 여사의 권유로 1963년 한국에 들어와 창덕궁 낙선재에 정착했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미국 문화에 익숙했던 줄리아는 엄격한 궁궐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인사이트2005년 한국을 찾았던 줄리아 리 / 연합뉴스


또한 벽안의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긴 종친회는 줄리아가 임신을 하지 못했단 이유로 이혼을 종용했다.


결국 두 사람은 오랜 별거 생활을 거쳐 1982년 정식으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이혼 후 이구는 일본으로 건너갔고, 줄리아는 한국에서 '줄리아 숍'이라는 의상실을 운영하게 됐다.


비록 남편과 이혼했지만, 줄리아는 시어머니 이방자 여사가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 '명위원'에 장애인을 고용해 기술 훈련을 시키는 등 사회에 모범을 보였다.


줄리아에게 일을 배운 장애인들은 그를 '큰 엄마'라 부르며 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이트2014년 줄리아 리의 모습 (가운데) / 연합뉴스


1995년 줄리아는 운영하던 숍을 정리하고 미국 하와이에 정착했다. 하와이에 거주하면서도 전 남편인 이구를 그리워했다고 알려졌다.


2000년 9월에는 잠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추억의 장소를 돌아봤다.


그동안 간직해왔던 조선 왕가의 유물과 사진 450점을 덕수궁박물관에 기증했는데, 이는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줄리아는 평생 그리워하던 전 남편을 끝끝내 만나지 못했다.


줄리아는 이구가 2005년 일본에서 숨진 채 발견된 뒤 서울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도 정식으로 초대받지 못했다.


인사이트1982년 줄리아 리의 모습 / 연합뉴스


이 때문에 그는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휠체어에 앉아 노제를 멀리서 바라봐야만 했다.


이 전 교수는 "줄리아는 항상 남편을 그리워했다"며 "죽은 뒤에는 유해 일부라도 한국에 보내지길 원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줄리아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살아서도 만나지 못했던 이들은 죽어서도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줄리아의 유해는 이미 바다에 뿌려졌고, 이구의 무덤은 고종과 순종이 묻힌 남양주의 홍유릉 영역에 마련됐다.


마지막 황족임과 동시에 한 남자를 사랑했던 지극히도 평범한 여인, 줄리아 리의 기구한 삶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의복은 원래 여리여리한 '로즈핑크'였다"조선 시대 관리들은 여리여리한 빛깔의 '로즈핑크'색 옷을 입었다"는 사실이 누리꾼 사이에 눈길을 끌고 있다.


이별님 기자 byul@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