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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한마디라도 들어주기라도 한다는 게 어딘가. 세상이 바뀐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한테 억울함을 호소하러 갔다가 김정숙 여사로부터 라면 한 그릇을 대접받은 60대 여성은 홍은동 사저를 나오면서 이같이 말했다.
13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억울해서 밥도 못 먹었다는 한 시민을 집으로 모셔 음식을 대접하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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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로 이사하는 날이었던 이날 오전 기자들과 함께 등산을 떠난 문 대통령을 대신해 김 여사는 홍은동 사저에 남아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60대 여성이 홍은동 사저 일대를 돌아다니며 "국토부의 정경유착을 해결해달라. 배가 고프다. 아침부터 한 끼도 못 먹었다"며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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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빌라에서 김 여사가 수수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한 끼도 못 먹었다는 여성의 목소리가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
김 여사는 "왜 배가 고프다 그런데? 왜?"하며 여성에게 다가왔고, 이 여성은 자신을 만나주러 나온 김 여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자세한 얘기는 모르겠고, 일단 밥부터 먹자"라며 "나도 밥 먹을라 했는데 들어가서 라면 하나 끓여 드세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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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 여성의 손을 잡고는 함께 홍은동 사저로 들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김 여사의 화끈한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몇 분이 흘러 이 여성은 두 손에 컵라면 한 사발을 쥐고 사저를 나왔다. 억울함이 가득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한결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신당동에 사는 배모씨라고 밝힌 이 여성은 "도저히 집까지는 들어갈 수가 없어 라면만 받아들고 왔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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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공덕역 인근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배씨는 공덕역 증축공사 과정에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고, 이에 대통령에게 항의하러 이곳을 찾았다.
배씨는 "4년 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에도 갔었다"며 "그땐 다가가려니까 바로 경찰서로 끌고 가 한 마디도 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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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대통령님이 너무 바빠 내가 전한 민원을 못 읽어볼 수도 있지만 한마디라도 들어주기라도 한다는게 어딘가. 세상이 바뀐 것 같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대선 투표날이었던 지난 9일부터 매일 아침 이곳을 찾았다는 배씨는 "얘기도 들어줬고, 밥까지 얻어먹었으니 이제 됐다"며 더 이상 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