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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나온 여자들'이 폭발시킨 '최순실 게이트'

진짜 '이대 나온 여자'들이 최순실 모녀 특혜 의혹에 최근 보여준 행동은 남달랐다.

인사이트(좌)영화 '타짜' / (우)연합뉴스


[인사이트] 문지영 기자 =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이 짧은 대사 한 마디는 '이대생'을 편견의 굴레 속으로 처박았다.


영화 '타짜' 속 정 마담(김혜수 분)은 '나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므로 감옥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무고한 이대생을 끌어들였다.


영화가 만든 이미지 탓에 이대생들은 콧대가 높고 비싼 커피를 마시며 명품백을 좋아하는, 일명 '김치녀'의 전형이 됐다. 그들은 단순히 이화여대에 다니는 것 자체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최근 불거진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학사특례 논란으로 '이화여대'는 또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최순실 모녀의 부당한 특혜에 맞서 진짜 '이대 나온 여자'들이 보여준 행동은 '정 마담의 대사'가 얼마나 편협하고 가벼운 것이었는지 증명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JTBC '뉴스룸'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2015년, 전에 없던 '승마특기생' 전형으로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유라는 입학 후 대부분의 수업에 출석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탈자에 비속어까지 난무하는 레포트를 제출하고도 당당히 'B학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학점 특혜도 논란이 됐다.


정유라는 지난 2014년에는 승마 국가대표 발탁에 이은 이대 합격으로 '특혜 의혹'이 제기되자 자신의 SNS에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타짜'의 정 마담이 외친 '이대 나온 여자'가 현존한다면 아마도 정유라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인사이트연합뉴스


현실의 이대생들은 정유라와 크게 달랐다. 불의와 비리에 반발하며 들고 일어선 것이다.


사실 이대생들은 7월부터 최경희 전 총장이 독단으로 밀어붙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순실 모녀가 최 전 총장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시위는 더욱 확산됐다.


시위 주동자는 없었다. 이화여대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을 통해 모인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온라인언론팀, 물품팀 등 TF를 꾸렸다. 재학생과 졸업생의 모금으로 시위 용품과 식량을 구비했다.


외부의 도움도 거절했다. 순수한 시위의 의도가 훼손될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현장에서 안건이 생기면 참가자들은 한 자리에 모여 토의하는 '직접 민주주의' 방식을 택했다. 의견을 낼 땐 또박또박 써내려간 대자보를 붙였고, 뜻이 왜곡될 우려가 있는 언론과의 개인 인터뷰는 철저히 금지했다.


진짜 '이대 나온 여자'들은 정권과 결탁한 학교의 비리에 분개하면서도 그 시위가 혹여나 격화되거나 의미가 변질되지 않도록 고민과 논의를 거듭했다. 결국 지난 19일 최경희 전 총장은 시위 84일 만에 사퇴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총장이 물러났다고 사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최경희 총장이 사퇴함으로써 최순실, 정유라 그리고 일부 교수들이 저지른 잘못들이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됐기 때문이다. 


정유라로 인해 학점 피해를 보고 '130년 이화여대'의 명성을 한 순간에 잃은 학생들의 억울함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대생들은 '이복절'(이화여대와 광복절의 합성어)을 맞은 뒤에도 본관 점거를 유지했고, 최순실 게이트가 커지자 앞장서 '시국선언'의 물꼬를 텄다.


학생들은 계속해서 직접 이화여대 총장 선출제도와 의사결정 제도를 민주화하고 현 정권의 부정을 밝히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이것이 그동안 '김치녀'로 매도됐던 '이대 나온 여자'들의 진짜 모습이다.


'이대 나온 여자'는 다시 정의돼야 한다. 진짜 '이대 나온 여자'들은 명품만 쫓는 '그저 그런' 여자가 아니라, 조금 서툴고 느리더라도 부당한 권력에 맞설 줄 아는 이들이다.


이대생들은 지금 철옹성 같은 '권력'에 도전하는 동시에 자신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스스로 깨부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 20~30대 청년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화여대와 함께 전국 40여 개 대학이 '시국선언'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비판 받아온 청년들의 '시대정신'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대학생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