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는 심장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도 손쓸 방법이 없어서 속상했는데, 이렇게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다른 친구들처럼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요"
14년간 선천성 심장병을 앓아온 필리핀 청소년이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찾았다.
최근 필리핀 세부 지역 직업 기숙학교에 다니는 빈센트 발렌테 군(14)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뒤 지난 9일 건강하게 퇴원했다. 그는 약 1주일간 통원치료를 마친 후 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빈센트 군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문제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집에서 심장질환 진료가 가능한 병원까지 5시간이 걸리는 데다 가정 형편마저 어려웠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생후 6개월 무렵 심한 기침으로 가까운 병원을 찾았지만 명확한 진단 없이 5개월 동안 일반 치료만 받았다. 생후 11개월이 됐을 때 필리핀을 찾은 독일인 의사가 심장병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심초음파 검사를 권했고, 검사 결과 '심방중격결손(ASD)'이 확인됐다.
심방중격결손은 좌심방과 우심방을 나누는 벽에 구멍이 생기는 선천성 심장질환이다. 환자는 운동할 때 쉽게 피로를 느끼고 호흡곤란을 겪으며, 방치할 경우 심부전이나 폐고혈압 같은 심각한 합병증으로 악화될 수 있다.
진단을 받았지만 빈센트 군은 이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지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 또래 친구들처럼 뛰어놀지 못하는 일상이 계속됐다. 그런 그에게 지난해 11월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는 '필리핀 저소득층 청소년의 건강 및 영양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빈센트 군의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이 검진에서 빈센트 군의 심장질환이 발견되면서 그는 한국으로 초청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됐다.
지난 1일 입원한 빈센트 군은 정밀 검사를 받았고, 심방중격결손과 함께 '부분폐정맥환류이상'이 추가로 발견됐다. 부분폐정맥환류이상은 폐에서 산소를 받은 혈액을 심장으로 보내는 폐정맥의 일부가 정상 위치인 좌심방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연결돼 있는 선천성 구조 이상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심방중격결손만 있다면 구멍을 막는 심방중격결손폐쇄술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부분폐정맥환류이상이 함께 있으면 폐정맥을 좌심방으로 제대로 연결하는 부분폐정맥환류이상교정술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의료진은 빈센트 군의 심장이 두 질환이 겹치면서 정상보다 많이 커져 있었고,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보내는 혈관도 늘어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 임재홍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와 이주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협진으로 수술을 진행했고 성공적으로 마쳤다.
빈센트 군은 수술 직후 집중치료를 받았으며, 다음 날부터 스스로 호흡이 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다.
이후 건강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9일 퇴원할 수 있었다. 필리핀 귀국 후에는 서울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가 환아 가족 및 학교 수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 1회 건강 상태를 확인할 예정이다.
수술을 집도한 임재홍 교수는 "10년이 넘도록 심장병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환아의 사정이 안타까웠다"며 "여러 후원기관의 도움으로 빈센트 군이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게 돼 의료진 모두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분당서울대병원
임 교수는 소아청소년의 선천성 심장질환과 복잡한 심장수술 전문 의료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수술은 여러 기관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한국과 필리핀 마리아 소년·소녀의 집 졸업생들이 환아와 가족의 입국 및 통역을 지원했다.
한국심장재단과 분당서울대병원 교직원이 자발적으로 만든 환자돕기후원회 '스누비안나눔회'가 수술비를 지원했으며, 재단법인 라파엘나눔은 수술비와 항공비·체재비 등을 함께 부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