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16일(수)

사도광산·군함도 소개하면서 강제노동은 쏙 뺐다... 일본 세계유산 가이드북 논란

일본 문부과학성이 유네스코 가입 75주년 기념으로 자국 세계유산을 소개하는 책자를 발간했지만,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빼고 일본의 산업화 성과만 강조해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 유적지를 둘러보는 여행'이라는 제목의 이 책자는 일본 전역 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문부과학성이 추진한 기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으며, 세계유산 관련 지자체들이 협력했다.


0003747890_001_20260914122110874.jpg조선인 강제 노동 역사를 삭제한 채 발간한 일본의 세계유산 관련 여행 정보 책자의 표지 / 일본 아마존 캡처


교도통신에 따르면 책자에는 지난 7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된 나라현 '아스카·후지와라 고대 수도'를 제외한 총 26건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수록됐다.


문제는 2015년 등재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과 2024년 등재된 사도광산을 소개하면서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를 완전히 누락했다는 점이다.


책자는 사도광산을 에도막부 시절 일본 최대 금 생산지로 소개하며, 17세기 이곳에서 캔 금이 전 세계 금의 약 10%를 차지했다는 등 에도시대 금광으로서의 면모만 부각했다.


일본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전체 역사 대신 에도시대만 조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 책자도 같은 방식을 택했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 금광으로 유명했지만, 태평양전쟁 본격화 이후에는 구리·철·아연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쓰였고 1천 명 이상의 조선인이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20251216500494_20251216060214638.jpg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 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책자는 사도광산 유적지 내부에 "광산 갱내에서 일하는 장인들의 모형이 전시돼 있다"고 소개했는데, 이는 조선인 노동자를 지우고 일본인 숙련공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한 "일은 가혹했지만, 당시의 그들은 굉장한 고임금을 받고 있었다"고 기술해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실을 희석시켰다.


하시마(군함도)가 포함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소개에서도 조선인 강제노동 역사는 빠졌다.


책자는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을 "사무라이들에 의한 근대화 프로젝트의 증거"라고 평가하며 "에도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일본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속도로 산업혁명을 달성한 것을 알려주는 유산들"이라고 치켜세웠다.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을 소개한 2페이지 중 1페이지를 군함도 소개에 할애하며 "첨단 기술을 갖췄던 해상도시 군함도"라고 서술했다.


0000036852_001_20240321135901756.jpg일제강점기 수많은 조선인들이 끌려가 강제로 노동했던 하시마섬(군함도)의 모습 / 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조선인 강제노역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하시마 탄광에 대해서는 "세계 유수의 해저광산으로서 국내외 석탄 수요를 뒷받침했다"는 언급에 그쳤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세계유산 등재 전후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동원에 관해 설명하겠다고 공식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않고 있다.


2020년 군함도와 멀리 떨어진 도쿄에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조선인 동원 소개가 아닌 자국 산업화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내용으로 채워 비판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메이지 산업혁명유산과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이후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린 데 대응해 사도광산 등재 이후 3년 연속 희생자 추도식을 일본과 별도로 열고 있다.


지난 7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당시 약속과 달리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결정문을 채택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조선인 강제노동 역사를 철저히 은폐하는 일본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역사 부정론이 되풀이된 것이자 세계유산위원회 권고를 명백히 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