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과 5·18 진압의 핵심 인물이었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12일 정 전 장관은 94세로 사망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과 함께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으로 불렸던 그는 이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신군부 핵심 5인 모두가 사라지면서 5·18 발포 명령의 실체와 의사결정 과정을 밝힐 핵심 증인도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12·12 군사반란 관련 34인의 신군부 인사들의 육사 기수와 당시 계급, 생존 여부, 안장정보 등을 나타낸 표. / 정성일
정 전 장관은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동기 관계였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참여한 그는 이튿날 육군 특전사령관에 올랐다.
민주화 이후인 1996년 그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진압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997년 대법원은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반란중요임무종사,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방조) 등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5·18 당시 특전사령관이던 정 전 장관은 항쟁 기간 최소 네 차례 광주를 찾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다른 작전 지휘계통 소속이었고 자신의 광주 방문은 예하부대의 행정·군수 지원을 위한 것이었다며 유혈 진압 책임을 일관되게 부정했다.
제 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이른 아침부터 참배객이 발걸음하고 있다. 2026.5.17/뉴스1
그러나 5·18 진압이 '신군부 핵심부→특전사령관→공수여단장'으로 연결되는 비공식 지휘라인을 통해 진행됐다는 주장은 계속 제기됐다. 대법원은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인 '상무충정작전' 지원에 대한 정 전 장관의 책임을 인정했다.
신군부 권력 중심에 있던 정 전 장관은 제5공화국에서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대장으로 전역했다. 전두환 정권 막바지인 1987년에는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잇달아 맡았다.
1988년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대구 서구갑에서 당선됐으나, 1989년 5공 청산 여론이 거세지자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육사발전기금 이사장과 특전사전우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 뉴스1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정 전 장관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약 5시간 만에 취소한 일도 있었다.
고재대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언론에 "5·18 책임자이자 옛 전남도청 진입 작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정 전 장관이 사죄 없이 떠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양재혁 5·18유족회 회장은 "정 전 장관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당시의 잘못까지 묻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의 빈소는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에 마련됐다. 병원 측은 사망 시각과 발인 일정 등 구체적인 장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장례식장 측에 따르면 유족들이 별세 관련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