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를 필두로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가파르게 상승하던 한국 증시가 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털)보다 빚을 내 투자하는 '레버리지'의 영향력에 흔들리는 취약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왔다.
15일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AI 주식 급락은 레버리지 과잉의 교훈이 되고 있다'는 분석을 통해 한국 주식시장이 레버리지 자금 흐름에 의해 좌우되는 실험장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시가총액이 편중된 상황에서 신용거래,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미국 주식예탁증서(ADR)가 긴밀히 얽히며 뉴욕과 서울 증시 사이에 24시간 내내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고착화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 13일 SK하이닉스 주가가 15% 폭락했을 당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운용사들은 자산 노출 비중을 맞추고자 대규모 주식 매도에 나섰으며, 이 강제 매도 물량이 다시 주가를 끌어내리는 연쇄 작용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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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 집계에 따르면 당시 레버리지 ETF들이 노출 비중 조정을 위해 시장에 던진 SK하이닉스 주식은 약 5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이는 당일 해당 종목 현·선물 거래량의 약 18%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러한 기형적 구조 속에서 장기 투자를 지향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증시에 대거 상장된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관련 레버리지 ETF 10여 개의 가격은 출시 이후 현재까지 약 40% 하락했다.
최근 나스닥에 상장된 SK하이닉스 ADR로 인해 한국 증시의 변동성이 글로벌 시장으로 전이될 위험도 제기된다. 전날 미국 시장에서 SK하이닉스 ADR이 27% 급등하자 오늘 코스피도 장중 7% 이상 동반 급반등하는 등 뉴욕의 움직임이 서울 증시에 즉각 실시간으로 반영됐다.
아룬 싱할 인디커스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은 레버리지가 시장을 반영하는 수준을 넘어 시장 자체를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실시간 실험장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가 상승기에 유입된 레버리지가 상승 폭을 키우지만, 하락장에서는 반대로 하락 압력을 극대화하는 부메랑이 된다는 경고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유관기관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시장 영향력을 정밀 점검하고 필요시 추가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 뉴스1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업계 역시 최소 증거금 비율 상향과 리밸런싱 거래 분산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일각에서는 레버리지 한도를 현행 2배에서 1.5배로 낮추는 규제안도 거론되지만, 해외 증시에 상장된 레버리지 상품에는 국내 규제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맹점이 존재한다.
지난달 38조 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신용융자 잔액도 잠재적 뇌관이다. 변동성이 추가로 확대될 경우 담보부족에 따른 강제 반대매매가 연쇄적으로 쏟아져 나와 하락장을 더욱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딜 에브라힘 클레이그룹 주식운용 책임자는 "투기적 상품은 결국 시장이 돌아설 때 눈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며, 기업의 펀더멘털은 바뀌지 않았는데 레버리지 ETF가 강제 매도에 나서면서 하락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