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21일(화)

[시승기] SUV인 줄 알고 탄 르노코리아 '필랑트'... 이 세단 같은 승차감과 정숙성, 뭔가요?

르노코리아의 '필랑트(Filante)'는 넓은 공간을 위해 '운전의 맛'을 타협해 온 SUV 시장에 던지는 꽤 선명한 반론이 아닐까 싶다. 


무게를 잊게 만드는 경쾌한 출력과 세단에 가까운 노면 장악력, 필랑트와의 첫 만남은 기분 좋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시속 120km까지 주행이 가능한 세종포천고속도로의 탁 트인 직선로부터 도심의 답답한 정체 구간까지, 르노코리아의 새 기함 '필랑트(Filante)'를 몰아보며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이 차의 성격이다.


필랑트는 단순히 큰 SUV가 아니다. SUV의 공간 활용성과 세단의 주행 감각을 한 차 안에 어떻게 공존시킬 수 있는지를 꽤 집요하게 고민한 결과물에 가까웠다. 


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


중형 SUV가 주류가 된 시장에서, 필랑트는 시각적으로도 다른 길을 택한 모습이다. 전면부의 날카로운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DRL)은 익숙한 SUV의 인상과 확실히 거리를 둔다. 


최상위 트림인 에스프리 알핀의 블랙 루프 파츠는 차체를 더 낮고 길어 보이게 만들며, 기함 특유의 존재감을 한층 또렷하게 만든다.


실제로 전장은 4915mm로 길게 뽑았고, 전고는 1635mm로 낮췄다. 단순히 쿠페형 실루엣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무게중심을 끌어내려 차체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제어하려는 의도가 더 짙게 읽힌다. 


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


겉모습의 날렵함이 곧 주행 감각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한 셈이다.


낮아진 차체가 곧바로 실내 공간의 손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고정형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가 시각적인 개방감을 크게 끌어올리고, 실제 2열 공간도 기대 이상으로 여유롭다.


180cm 성인이 앉아도 헤드룸과 레그룸 모두 준대형급에 걸맞은 수준이다. 트렁크 용량 역시 633L로 넉넉하다. 스타일과 실용성 사이에서 어느 한쪽만 선택한 차는 아니라는 뜻이다.


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


본격적으로 속도를 올리자 필랑트의 진짜 매력이 드러났다. 1.5L 가솔린 터보 엔진에 2개의 모터를 결합한 E-Tech 직병렬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합산 최고출력 250마력을 낸다.


가속 페달을 전개하는 순간 모터가 지체 없이 개입하며 차를 매끈하게 밀어낸다. 전개감은 전기차처럼 부드럽고,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힘은 생각보다 제법 단단하다.


세종-포천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km까지 속도를 올리는 과정에서도 답답함은 없었다. 속도가 붙을수록 힘이 빠지는 차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자세를 낮추는 느낌이다.


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


추월 가속에서도 머뭇거림이 적고, 고속 영역에서의 여유도 충분하다. 이 차가 지향하는 '세단 같은 SUV'라는 표현이 빈말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가장 인상적인 건 차체 제어였다. 낮은 차체와 주파수 감응형 댐퍼(FSD)의 조합은 기대 이상으로 완성도가 높다.


고속도로 위 잔진동은 부드럽게 걸러내면서도, 빠른 선회나 급격한 차선 변경 상황에서는 차체를 단단히 붙들어준다.


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


SUV를 탈 때 흔히 느끼는 좌우 롤링이 과하게 올라오지 않고, 차는 예상보다 훨씬 평정심 있게 노면을 따라간다. 


정숙성도 인상적이었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ANC)과 이중 접합 차음 유리가 만들어내는 실내 분위기는 고속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시속 100km를 넘긴 뒤에도 바깥 소음이 거칠게 밀려들지 않는다. 


풍절음은 잘 눌려 있고, 실내에서는 보스(BOSE) 서라운드 시스템의 저음이 비교적 또렷하게 살아났다. 장거리 주행에서의 피로도를 줄이는 데 신경을 많이 쓴 차라는 점이 이런 부분에서 드러났다. 


KakaoTalk_20260420_163403069_07.jpg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


도심으로 들어오면 필랑트의 성격은 또 다르게 읽힌다. 출력과 핸들링이 이 차의 장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상 주행에서의 완성도 역시 기대 이상이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정체 구간에서 르노 특유의 오토홀드 시스템은 꽤 유용했다. 물리 버튼 없이도 브레이크 답력에 따른 개입과 해제가 자연스럽고, 반복 주행에서도 이질감이 크지 않아 운전의 피로를 눈에 띄게 덜어줬다. 


하이브리드 차량에서 종종 거슬리는 회생 제동과 유압식 브레이크 사이의 전환감도 매끄럽게 다듬었다.


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


중첩 구간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꿀렁임이 크지 않고, 제동 감각도 비교적 자연스럽다. 이런 부분은 화려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매일 타는 차의 완성도를 가르는 핵심이다. 


자동 주차 보조 시스템 역시 완성도가 높았다. 좁은 공간에서도 주저함 없이 빠르고 반듯하게 주차를 마무리하는 모습은 체감 만족도가 확실했다. 


연비의 경우 고속도로 주행시 18.5km/L까지 찍혔다. 급가속과 고속 주행이 반복된 비교적 가혹한 환경에서도 실연비는 14.5km/L를 기록했다.


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


덩치와 출력, 그리고 주행 성향을 함께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이다. 단순히 잘 달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이브리드다운 효율까지 일정 수준 챙긴 셈이다.


다소 민감한 차선 유지 보조 기능, 전진에서 후진으로 기어 노브를 조작할 때 2번의 동작이 필요하다는 점은 처음에 조금 불편한 부분이었으나, 탑승자의 안전을 고려한 선택이라는 에서 납득할 만했다. 


필랑트는 결국 감각으로 설득하는 차였다. 수치와 사양표만으로 설명하기보다, 실제로 몰아봤을 때 왜 르노가 이 차를 내놨는지가 더 또렷하게 이해된다. 


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


SUV의 공간은 필요하지만 박스형 차체의 둔한 움직임에는 싫증이 난 소비자, 세단의 안정감과 운전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운전자라면 필랑트는 충분히 흥미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획일화된 SUV 시장에서 필랑트는 꽤 선명한 답을 내놓는다. 더 높고 더 커지는 대신, 더 낮고 더 정교하게 달리는 방향을 택했다. 직접 몰아본 필랑트는 'SUV처럼 보이는 세단'에 가까웠고,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르노코리아 필랑트 /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