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파트 화재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주민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지난 2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생존자의 증언은 화재 현장의 참혹함과 절망적인 순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 32층 아파트 단지 2층에 거주하는 윌리엄 리(40세)는 지난 26일 오후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아내의 전화로 화재 발생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윌리엄 리는 탈출을 시도하며 현관문을 열었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복도와 숨 막히는 연기에 막혀 다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비상구를 통한 대피 가능성을 문의했지만, 로비가 불바다라는 소식을 듣고 모든 대피로가 차단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홍콩 화재 생존자가 집 안에서 촬영한 창밖 화염 / 페이스북
그는 "집이라는 연옥에 갇히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무력하게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의 절망적인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정신을 차린 윌리엄 리는 수건에 물을 적시던 중 복도에서 들려오는 외침 소리를 듣고 젖은 수건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연기로 인해 눈물이 흐르고 목이 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복도 벽을 더듬어가며 한 쌍의 부부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집 안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더욱 절망적이었습니다.
불길과 함께 검은 잔해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절망의 비였다. 너무 잔혹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윌리엄 리는 "인생에서 만남과 헤어짐, 운명의 기복은 통제 밖에 있지만 적어도 내 몸은 통제할 수 있다고 항상 생각했다"며 "이런 마지막 통제권마저 화염에 의해 무자비하게 빼앗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죽느냐 사느냐'는 철학적 질문이 이처럼 구체적으로 잔혹하게 내 앞에 놓인 적이 없었고, 그에 대한 답은 내 손에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계속되는 폭발음과 함께 영원히 그곳에 갇힐 것이라는 절망감이 엄습하던 순간, 창가에서 소방관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손을 흔들며 손전등을 비춰 구조를 요청한 결과, 화재 발생 약 1시간 후인 오후 4시경 소방관들이 이들을 발견했고, 오후 6시경 고가 사다리를 통해 구조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구조 과정에서도 윌리엄 리는 "짙은 연기보다 더 숨 막히게 한 것은 철저한 무력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며 재난 앞에서의 무력함을 토로했습니다.
소방관은 함께 있던 부부를 먼저 구조했고, 윌리엄 리는 집에서 기다리며 귀중품과 자녀의 장난감, 아내의 애장품 중 무엇을 가져갈지 고민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더 많은 물건을 챙길 수 있었지만 그 자리에 서서 아수라장이 된 주변을 둘러봤다. 마치 집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습니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윌리엄 리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우릴 구출해 준 소방관에게 감사하다"며 구조팀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는 "이번 끔찍한 화재는, 우린 결코 삶의 주인이 아니고 일시적이고 연약한 거주자일 뿐이라는 무상(無常)을 깨닫게 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어 "힘든 시기이지만 우리의 정신은 더 강하다. 함께 치유하고 재건하자"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번 화재는 지난 26일 오후 2시 51분경 홍콩 북부 타이포의 32층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 7개 동에서 발생했으며, 약 43시간 만에 완전 진압되었습니다.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소방관 1명을 포함해 128명, 부상자 79명, 실종자는 약 200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수색 작업이 계속됨에 따라 실종자 중 추가 사망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홍콩 당국은 29일부터 사흘간을 공식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