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국 기술 봉쇄가 역설적으로 중국 토종 기업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AI 칩 설계업체 캠브리콘의 창업자가 올해 들어 급격한 자산 증가를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16일(현지 시간) 캠브리콘 창업자 천톈스의 재산이 1년 새 두 배 늘어난 234억 9400만 달러(약 34조 2600억 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 40세 이하 부자 순위에서 3위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1·2위인 월마트 상속자 루카스 월턴과 레드불 상속자 마크 마테시츠를 제외하면, 순수 창업자 중에서는 사실상 최고 수준입니다.
천톈스의 자산 급증은 캠브리콘 주가 상승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캠브리콘 주식은 8월 들어 2배 이상 급등했으며, 중국이 엔비디아의 중국용 저사양 AI 칩 'H20' 사용 금지령을 발표한 소식이 주가 상승을 견인했습니다.
캠프리콘 홈페이지 캡처
여기에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4배 이상 증가했다는 실적 발표까지 더해지면서, 캠브리콘은 한때 마오타이를 제치고 중국 본토 증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천톈스는 캠브리콘 지분 28.4%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개인 자산 대부분이 주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도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빅테크 규제를 강화했던 중국 당국이 미국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테크 기업 육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특히 중국에서 나고 자란 젊은 '토종 수재'들을 적극 지원하는 분위기가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1985년생인 천톈스는 대표적인 토종 인재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14세에 중국과기대(USTC) 소년반에 입학했고, 졸업 후 중국과학원(CAS)에 진학해 25세에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캠브리콘 역시 CAS에서 분사된 기업으로, 현재도 CAS가 2대 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딥시크의 량원펑과 AI 로봇 업체 유니트리의 왕싱싱도 각각 저장대와 저장과기대 출신으로, 최근 주목받는 신흥 테크 기업 대표 다수가 토종 창업자들입니다. 블룸버그는 "천톈스의 성공 스토리는 량원펑과 더불어 중국식 국가 주도 인재 육성 시스템의 대표 사례로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기대감 상승으로 외국인 투자심리도 개선되고 있습니다. 국제금융협회(IIF) 자료에 따르면, 중국 주식으로 유입된 역외 자금은 올해 10월까지 506억 달러(약 73조 7748억 원)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114억 달러(약 16조 6200억 원)와 비교해 5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2021년의 736억 달러(약 107조 3600억 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빅테크 규제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외국인 투자 이탈이 심했던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반전으로 해석됩니다.
알파 매크로의 얀 왕 전략가는 "2년 전만 해도 중국은 많은 사람들에게 '투자 불가능한' 시장이었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테크 기업의 성장이 시장 논리보다 당의 정책적 지원에 의존한다는 점은 리스크 요인으로 지적됩니다. 당국의 지원이 중단될 경우 많은 기업이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 투자자문사 샹송앤드코의 션멍 이사는 "캠브리콘의 폭발적인 매출 성장은 많은 부분 기저 효과 덕분"이라며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이 없다면 현재 기업가치는 과대평가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빅테크 생태계를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존재합니다. 워싱턴DC 싱크탱크 제임스타운재단의 서니 청 연구원은 "캠브리콘이나 화웨이가 중국의 엔비디아로 성장할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쿠다(CUDA) 생태계를 포함한 엔비디아의 전체 기술 스택을 빠르게 복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