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 입학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아이뿐만 아니라 학부모까지 평가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5살 아들을 키우는 한 학부모는 지난달 송파구 영어유치원 입학설명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외국인 강사가 교육 방침을 발표한 후 한국인 원장이 "요즘 어머니들은 다들 능통하시죠?"라며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갔습니다. 학부모들에게 영어 듣기 평가를 치르게 한 것입니다.
해당 학부모는 배우자와 함께 '광클릭'으로 가까스로 설명회 신청에 성공했지만, 이제 입학을 위한 '입금 전쟁'에 참전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선착순 입금으로 입학이 정해지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고, 입학에 성공해도 레벨테스트를 통과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마포구 한 영어유치원에서는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치원 측에서는 입학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을 한 교실에 앉혀놓고 "IQ 120 넘는 분은 손을 들어보라"고 요구했습니다. 질문은 "IQ 130 넘는 분", "140 넘는 분"으로 수위가 높아졌고, 마지막까지 손을 든 학부모에게는 구체적인 IQ 수치까지 물었다고 합니다. 해당 학부모는 "학부모를 레벨테스트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고, 결과적으로 다른 유치원을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영어유치원 규제를 공언하고 있지만, 지난달부터 주말마다 열리는 2026학년도 입학설명회에는 여전히 많은 학부모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월 최소 100만원 이상의 수업료에 원복, 급식비, 셔틀비 등을 포함하면 2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들지만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강북지역 한 영어유치원 입학설명회에서는 홍보영상을 통해 "서울의 모든 대학이 영어 수업을 진행한다. 영어유치원을 다니지 않으면 수업도 못 듣고, 자존감도 바닥날 것"이라는 내용을 보여줬습니다. 일종의 공포 마케팅을 펼치는 것입니다. 학부모들은 설명회 내내 메모를 하거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며 집중했습니다.
지원자가 몰리는 인기 영어유치원들은 학부모들을 까다롭게 선별하고 있습니다.
서대문구 한 영어유치원에서 근무했던 직원은 "설명회 때 학부모들의 옷과 가방을 봤다가 기록했다"며 "입학원서에도 학부모의 직업과 학력을 쓰도록 해 반 배치에 반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럼에도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낸 학부모들은 만족감을 표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두 아들이 모두 영어유치원 출신이라는 한 학부모는 "다니지 않은 친구들과 시작점이 확실히 다르다. 당장 영어학원 선택의 폭이 달라진다"며 "영어유치원에 보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4세 고시', '7세 고시'라고 불리는 영어유치원 레벨테스트를 금지하는 법안이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에 의해 발의돼 있습니다. 과도한 경쟁과 불필요한 사교육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이지만 반대 여론도 상당합니다.
권정윤 성신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모든 학자는 영유아 시기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 시기라고 보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스스로 동기 부여가 돼야 제대로 된 학습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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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