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아프리카 우물 사업을 가장한 대규모 테러자금 모금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이 국제 테러단체의 자금 조달 경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는 우즈베키스탄 국적 A(29)씨를 테러방지법·테러자금금지법·기부금품법 등 위반 혐의로 수원지검에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2018년 3월 유학생 비자로 국내 대학에 입국한 후 중퇴했으며, 2022년 6월부터 지난달까지 'Y' 자선단체 모금을 위장해 암호화폐 테더(USDT) 62만6819개(한화 약 9억5276만원)를 모금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국내에서 적발된 테러 자금 송금 규모로는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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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J와 관련된 테러자금 송금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KTJ(카티바알 타우히드왈 지하드여단)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 타도와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목표로 2014년 만들어진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입니다. UN, 러시아, 우즈벡 등은 이들을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한 중앙아시아 국적 유학생 B씨는 KTJ에 77만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송금했다가 지난 7월 부산지법 항소부에서 테러자금금지법 위반 혐의로 1심과 동일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인 불법 체류 노동자 C씨 역시 KTJ에 약 80만원을 송금한 혐의로 지난 9월 울산지법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처럼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해외 테러단체로 자금을 송금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잠복해 있던 테러단체 조직원이나 추종자들이 잇따라 검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KTJ는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던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알누스라 전선의 지시를 받아 자금·무기·인력을 공급하거나 테러 행위를 직접 수행하는 조직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A씨는 자선단체 지원을 사칭하며 직접 테러 자금을 모금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경기도에서 축구 동호회를 운영하며 자국인들을 상대로 돈을 받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난민 사진을 게시하며 "지하드(성전)를 하자"고 선동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2022년 KTJ에 가입했으며, 자국에서 수배 및 추적을 받자 한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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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경찰 조사에서 "KTJ는 테러단체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상대적으로 소액을 테러단체에 송금한 B씨와 C씨의 경우 지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단체 조직원의 설득에 의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자금세탁방지기구(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영리조직 지부를 사칭하거나 해외 조직원을 이용해 송금을 받는 방법은 자국 내에서 정상적인 금융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는 테러단체들이 자주 사용하는 자금 조달 방식이라고 합니다.
'테러 자금 금지법'은 테러 자금을 모아 제공·보관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 및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그간 "테러단체에 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범죄를 꾀하고, 이를 실행하는 테러단체의 존속을 돕는 것으로서 엄하게 처벌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지속해왔습니다.
경찰 등 수사기관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해왔지만, 이들이 개인 차원에서 범행을 저지르거나 암약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보다 다양한 방안으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