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베이글뮤지엄(LBM)에서 근무하던 20대 직원이 과로로 숨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독립서점들이 잇따라 런던베이글뮤지엄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28일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의 독립서점 '책방토닥토닥'을 운영하는 책방지기 A씨는 런던베이글뮤지엄 창업자 이효정(료)의 저서 '료의 생각 없는 생각' 표지에 직접 문구를 적어 전시했습니다.
Instagram 'london.bagel.museum'
표지에는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 부도덕한 것이다. 고인의 이름은 정효원. 언젠가 자기 매장을 열겠다는 꿈을 짓밟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책임을 회피하지 마라. 산재신청이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료! 생각 없이 회사 운영하지 말라'는 문장이 적혔습니다.
A씨는 SNS를 통해 장문의 글도 게재했습니다. 그는 "한 청년 노동자의 꿈이 꺾였습니다. 장시간 노동을 견디며 했던 것은 자신의 꿈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마 자신의 일과 회사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 것입니다. 그 책임감들이 모여 회사는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태도에 분노하면서도 이 시대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을 다루는 회사의 태도들에 분노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영화 '다음 소희'의 모티브가 되었던 전주 유플러스 상담센터 노동자의 죽음도, 작년 전북 특장차 기업 '호룡'의 몽골 청년 노동자 고 강태완 님의 죽음에서도 그랬습니다"라며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창업자 료 씨는 자신이 쓴 책 '료의 생각 없는 생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정한 속도보다는, 나의 시간을 들여 찬찬히 방향의 일관성과 누적을 추구하는 편이다. 맞지 않는 방향에 세상의 속도까지 내면 큰일이니까.' 그리고 '나로 태어나 내가 원하고 바라는 삶을, 타인을 해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미안해하지 않기를...'이라고 썼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한 청년 노동자는 료 씨가 만든 회사가 정한 속도에 자신을 맞췄습니다. 부디 그 속도에 대해 료 씨가 책임 있는 발언을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타인을 해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추구했다면 이번 일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해지펀드에 자신의 철학이 담긴 회사를 판 것은 본인이고, 이미 이번 사태는 그 전부터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부디 창업주 료 씨가 자신이 쓴 책을 배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이 있던 자리에 당분간 우리의 주장이 담긴 책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올려둡니다. 부디 이 책을 다시 판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청년 노동자 고 정효원 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마무리했습니다.
제주에서 독립서점 '소리소문'을 운영하는 책방지기 B씨 역시 공식 SNS를 통해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산재를 인정하고 상식적인 대처를 할 때까지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산재' 코너에 박제해놓겠습니다.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합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앞서 고(故) 정효원 씨는 지난 7월 문을 연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에서 근무하다 회사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유족 측은 고인이 매장 개점 준비 과정에서 물품 정리, 직원 채용, 영업 매뉴얼 작성 등 각종 업무를 도맡으며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근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망 하루 전에는 "일 때문에 밥도 못 먹었다", "자정이 다 돼서야 퇴근했다"는 메시지를 보낸 정황도 확인됐습니다.
이에 유족은 산업재해를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런던베이글뮤지엄 측 임원은 장례식장에서 "효원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착실하고 일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다 해주겠다"고 했지만, 이후 유족 측이 공인노무사인 조카를 소개하자 회사의 태도는 돌변했다고 합니다.
유족은 "그날 밤 회사 측에서 '우리 직원 괴롭히지 말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 후로 연락이 끊겼다"고 주장했습니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측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밤늦게 유족에게 전화를 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Instagram 'london.bagel.museum'
런던베이글뮤지엄 측은 "매장 오픈 전후 본사가 파악하지 못한 연장근로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고인의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4.1시간이었다. 주 80시간 근무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노동청 등 관계 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라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성실히 임하겠다"며 "근태관리 의무화 및 전 직원 교육을 통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사건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청년의 죽음에 기업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시간 / 온라인 커뮤니티
한편 런던베이글뮤지엄은 2021년 9월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첫 매장을 열며 '베이글 열풍'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현재 전국에 7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2022년에는 법인명을 런던베이글뮤지엄(London Bagel Museum)의 약자인 엘비엠(LBM)으로 변경했습니다. 엘비엠은 런던베이글뮤지엄 외에도 아티스트베이커리, 카페 레이어드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엘비엠의 연간 매출은 796억 원, 영업이익은 243억 원, 당기순이익은 204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열풍을 이끈 이효정 창업자 겸 CBO(최고브랜드책임자)는 약 20년간 패션업계에서 활동한 인물로, 공간 연출과 감성 마케팅을 주도하며 '베이글의 명소'를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출판 활동 등을 통해 팬층까지 확보했습니다.
Instagram 'london.bagel.museum'
엘비엠은 올해 7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에 약 2000억 원에 매각됐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같은 달 29일 JKL파트너스의 엘비엠 인수에 따른 기업결합을 승인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안이 브랜드 매각 이후 발생해 이효정 창업자와는 관련 없는 별개의 사건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인의 사망 시점이 지난 7월 16일로 확인되면서, 이효정 전 디렉터 역시 경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효정 전 대표는 논란이 불거진 직후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전환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