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오늘(7일)은 일본 군복 '치욕'이라던 조선의 왕자가 '히로시마 원폭'에 희생된 날입니다

인사이트이우 / 皇室皇族聖鑑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945년 8월 6일, 미군의 폭격기 B-29에 실렸던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히로시마 상공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원자폭탄의 거대한 불기둥이 잠잠해진 뒤, 한 길거리에서 머리부터 가슴까지 화상을 입어 피부가 문드러진 한 남성이 발견됐다. 


윗옷이 모두 날아간 채 쓰러져 있던 그는 대한제국 황족 이우였다. 


병원으로 후송되고 의식을 되찾아 "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한 그는 몇 시간 뒤 극심한 피폭 증상을 보이다가 다음 날인 8월 7일 오전 5시경 세상을 떠났다. 


인사이트이우 / 皇室皇族聖鑑


일본군 장교였던 그는 1945년 5월 휴가를 받고 서울에서 가족들과 단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과의 전쟁을 위해 일본 히로시마로 오라는 상부의 명령이었다. 일본의 군복을 입는 것이 치욕스럽다던 그였기에 일본 본토 귀환 명령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그의 둘째 여동생 이해원은 "지금 일본으로 가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권총을 들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이우 또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진 것을 알고 있었기에 꾀병을 부리며 전출을 미뤄보기도 했지만 군인이었기에 끝까지 명령을 어길 수 없었다. 


인사이트에놀라 게이에서 촬영한 '리틀 보이'가 일으키는 버섯 구름 / wikipedia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히로시마에 부임하고 한 달 뒤인 1945년 8월 6일, 기마 헌병 2명의 호위를 받으며 말을 타고 출근 중이었던 이우는 원자폭탄 투하 지점에서 700m 떨어진 곳에서 피폭당해 다음날 사망했다. 


일본의 패망이 불과 일주일여 남은 때였다.


타국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 그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가 62년이 지난 2007년에서야 이 사실이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일본 측이 유족의 동의 없이 그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하고 따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인사이트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린 이우 사망 기사 / Wikipedia


삼촌이었던 의민황태자(이은)의 부인 이방자 여사는 "일본인들에게 말썽꾸러기였다. 일본 것에 대하여 병적이라고 할 만큼 싫어했다"며 이우를 기억했다.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인 일본의 황족 아사카 다케히코는 "조선은 독립해야 한다고 항상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에게 결코 뒤지거나 양보하는 일이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우 왕자가 세상을 떠난 날인 오늘(7일),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여전히 무겁다.


한편 그의 장례식은 1945년 8월 15일에 경성운동장에서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의 운현궁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