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6월 25일, 오늘은 6.25 전쟁 제71주년이다.
한국 전쟁 당시 우리나라 '덕수궁'을 지켜내기 위해 힘썼던 미군 장교의 노력이 재조명돼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기고 있다.
6.25전쟁이 발생한 1950년 제임스 해밀턴 딜 중위는 포병장교로 자원해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UN군의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제임스 해밀턴 중위는 155mm 곡사포의 포격지점을 지시하는 책임을 맡았다.
KBS1 '역사스페셜'
전쟁이 길어지던 1950년 9월 25일, 제임스 해밀턴 중위는 서울 덕수궁에 인민군 수백 명이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당시 전쟁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은 곧장 '덕수궁'을 폭파할 것을 명령했다.
'덕수궁'만 폭파하면 인민군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울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다.
국가보훈처 공식블로그
하지만 제임스 해밀턴 중위는 자신이 포격 개시를 명령할 경우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덕수궁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에 참담한 심경을 느꼈다.
자신의 포격 한 번에 한국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고궁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그는 고민 끝에 상관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제임스 해밀턴 중위의 간곡한 설득 끝에 그의 상관은 작전을 변경했다.
결국 제임스 해밀턴 중위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인민군이 모두 덕수궁을 빠져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어떠한 공격도 하지 않았다.
KBS1 '역사스페셜'
얼마 후 인민군이 덕수궁을 벗어나자 그제야 제임스 해밀턴 중위는 후퇴하는 인민군을 향해 포격개시를 명령했다.
이날 제임스 해밀턴 중위가 덕수궁에 바로 포격을 명령했다면 우리는 지금 덕수궁을 사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1996년 한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를 지켜준 딜 중위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2년 뒤 하늘의 별이 된 딜 중위의 묘비에는 'U.S ARMY'라는 글씨와 함께 'KOREA'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KBS1 '역사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