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6℃ 서울
  • 8 8℃ 인천
  • 16 16℃ 춘천
  • 15 15℃ 강릉
  • 16 16℃ 수원
  • 13 13℃ 청주
  • 13 13℃ 대전
  • 11 11℃ 전주
  • 13 13℃ 광주
  • 16 16℃ 대구
  • 18 18℃ 부산
  • 16 16℃ 제주

강제징용된 조선인들 도와줬다가 '매국노'로 몰려 모진 고문 받고 세상 떠난 일본인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을 몰래 숨겨주다 발각돼 모진 고문 끝에 세상을 떠난 일본인들의 이야기가 재조명 되고 있다.

인사이트Twitter 'CJ Entertainment'


[인사이트] 임기수 기자 =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뼈아픈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행했던 많은 악행들은 지금도 우리를 분노케 한다.


특히 조선인들을 탄광촌 등으로 강제로 끌고 가 노동착취는 물론 비인간적인 행위를 일삼은 강제징용은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쓰리게 하고 있다.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광산에서 도망친 조선인 광부를 숨겨줬다가 모진 고문으로 희생된 일본인과 그런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50년간 강제 동원 피해자의 삶을 기록했던 아들의 이야기가 재조명되고 있다.


인사이트twitter 'CJ Entertainment'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군함도'


과거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은 사할린 섬 등 일본의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당하거나 군속으로 차출되어 일본이 침략한 동남아와 남양 군도(미크로네시아) 지역의 군사 기지 건설이나 철도 공사에 동원되었다.


이중 상당수가 임금 없이 과중한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결국 배고픔과 극심한 학대를 견디지 못한 조선인들은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후쿠오카의 탄광지대에 있던 신사의 신관이었던 하야시 토라지는 강제 징용됐다 도망쳐 나온 조선인 광부들을 숨겨줬다.


하야시 토라지는 자신의 신사에 찾아온 조선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부인은 조선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먹을 것을 준비해 줬으며 그는 이들의 탈출을 도왔다.


인사이트


인사이트EBS '지식채널e'


하지만 이내 이것이 모두 들통이 났고, 하야시 토라지는 고등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결국 그는 1주일 만에 집에 돌아왔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죽어서도 그는 조선인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국가의 적'이 됐다.


하지만 그의 아들 하야시 에이다이는 아버지의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받들어 하야시 에이다이 역시 일제의 희생자들을 위해 선인들의 피해 실상을 취재해 기록으로 남겼다.


인사이트


인사이트EBS '지식채널e'


오늘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군함도의 조선인 강제노역 관련 자료가 공개될 수 있었던 것도 하야시 덕분이었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 학살, 자살특공대 등과 관련 살면서 총 57권의 책을 펴낸 하야시는 항상 협박 전화와 살해위협에 시달렸지만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일본이 저지른 비인간적 참상에 대해 참회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17년 83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일제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생애를 바쳐 발로 뛰며 모아온 역사적 사료 6천여 점을 한국의 국가기록원에 기증하고 떠났다.


인사이트EBS '지식채널e'


생전 하야시 에이다이는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 하나가 있다고 했다.


1945년 8월, 부친이 탈출을 도왔던 조선인 광부들이 해방을 맞은 고향에 돌아가기 전 다시 찾아왔다. "고맙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 재산이었을 10엔을 건넸다.


하야시는 말했다. "이 돈이 저의 유일한 유산입니다"


조선인을 도왔던 아버지와 그 뜻을 이어 받아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데 생을 바친 하야시 에이다이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