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우리도 작은 민족이 아니다!"···'거대 성기'로 역사 속에 이름 남긴 남성들 5명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남성들에게 성기 크기는 자존심과 연결된다. 어쩌면 집이나 자동차 크기를 따지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중요한 요소일지 모른다.


역사 속에서 남성 성기와 관련한 이야기를 찾자면 역시나 지금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남성 중심적 사고가 강했던 과거 속에서 성기의 크기는 부와 권력 혹은 탐욕을 상징하기도 했다.


거대한 성기를 가져 역사 속에 기록된 남성들을 찾아봤다. 이들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역사를 즐기는 재미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1. 지증왕


인사이트YouTube 'EBS키즈'


신라 제22대 왕이었던 지증왕은 1척 5촌이나 되는 성기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1척은 33cm로 1척 5촌은 40cm가 넘는다. 


고대에는 지금과 기준이 달라 1척이 23cm라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지증왕의 성기 길이는 30cm가 넘는다. 


거대 성기의 소유자였던 지증왕은 아내를 찾는데도 꽤나 고생했던 듯하다. 어렵게 구한 아내는 키가 7척 5촌이었다고 전해진다. 


역사학자들은 당대의 학자들이 지증왕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성기 크기를 과장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2. 경덕왕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평양성'


신라의 제35대 국왕이 경덕왕도 커다란 성기를 가진 왕으로 묘사된다. 그 큰 성기 때문에 적절한 왕비를 찾지 못했을 정도라고 전해진다. 


결국 본래 왕비를 폐위하고 새로운 왕비를 맞이했는데 다음 왕위를 물려 받을 아들을 낳지 못했다. 


당대 가장 유명했던 스님 표훈대덕을 불러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본래 딸로 태어났어야할 아이가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아들로 태어났는데 여자와 술에 빠져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다. 


3. 노애


인사이트EBS '불멸의 진시황'


중국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했던 인물 '진시황'과 관련해 하나의 설화가 이어지는데 그의 어머니였던 왕태후 조의가 노애라는 인물과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노애는 유난히 크고 아름다운 성기를 갖고 있어 주변의 여성들이 그와 하룻밤을 보내길 소망했다고 한다. 


특별한 직업 없이 여러 여성들의 기둥서방 역할을 하며 풍족하게 살아온 노애의 주특기는 성기에 커다란 수레바퀴를 끼워 돌리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노애와 왕태후 사이에서 진시황의 이복 동생이 태어나는데 이 아이를 왕으로 세우려고 반란을 일으킨 노애는 사형을 당했다. 그의 성기는 처참히 잘려 성문 앞에 걸렸다고 알려졌다. 


4. 카사노바


인사이트영화 '카사노바'


오늘날 카사노바는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이탈리아인이었던 그는 대단한 여성 편력가로 알려졌는데 유부녀와 귀족, 수녀는 물론 자신의 친딸에게까지 추파를 던졌다. 


물론 이런 방탕한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발기부전 등으로 성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일설에 따르면 그가 거대 성기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진짜 이유는 그들을 대하는 진심어린 태도였다고 한다. 


5. 라스푸틴 


인사이트Wikimedia Commons


러시아 황제의 외아들이 앓고 있는 혈우병을 고친 후 일약 스타가 된 그는 황제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결국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 그는 밤이면 거대한 파티를 열고 귀족의 부인들을 유혹하고 농락하기도 했다. 


황후와의 스캔들이 번지기도 했는데 일설에 따르면 그는 황후와의 관계를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러한 라스푸틴은 평상시에도 30cm에 이르는 성기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대 러시아 귀족 여성들은 라스푸틴과의 관계를 자랑하고 다녔을 정도라고.


제정 러시아가 몰락한 후 러시아 혁명 정부는 라스푸틴의 음란함과 폐륜을 선전하고자 그의 성기를 잘라 보관하였는데 현재에 이르러서 역사적 유물로 각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