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조선시대 39명의 남성과 '섹스스캔들' 일으킨 여성에게 세종대왕이 내린 처벌

인사이트YouTube '채널A Home'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대왕 때 지금 말로 '역대급'이라 할 수 있는 '섹스스캔들'이 터졌다.


한 여성이 39명이나 되는 남성과 불륜을 저지른 사건이었다. 


세종 시기를 대표하는 이승, 황치신, 전수생, 이돈 등의 관료들을 시작해서 수많은 양반가 남성들도 이 여성과의 불륜에 연루됐다.


여성의 이름은 유감동. 본래 양반집에서 태어나 평강현감 최중기와 결혼해 잘살고 있었으나 김여달이란 인물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이렇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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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감동이 성폭행을 당한 후 사람들은 가해자인 김여달보다 그녀의 행실을 더욱 문제 삼아 비난했다. 


정절을 잃은 사대부 여인을 받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남편 최중기는 유감동을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집에서 쫓아내 버렸고 도망치듯 찾아간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이후 유감동은 절망감에 빠졌던 듯하다. 


그녀는 결국 기녀로 생활하면서 자신을 강간한 김여달과 관계를 유지했고 이후에도 여러 남성과 불륜 관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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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세종대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조선의 기강을 송두리째 흔든 이 사건에 세종대왕은 머리가 아팠다. 


유감동이 체포되고 세종대왕이 직접 심문을 맡았다. 그녀의 입에서는 엄청난 인물들의 이름이 쏟아져나왔다. 


조정에서는 유감동에게 사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그녀를 죽이지 않고 노비로 삼는 데 그쳤다. 


아들이 유감동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황희 정승은 "이 정도 처벌은 말도 안 된다"며 불만을 터뜨렸지만 세종대왕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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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세종대왕이 이 사건을 두고 유감동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유교 사회가 무르익지 않은 조선 초기의 성 풍속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라는 시각도 있다. 


해석은 분분하지만 유감동과 동시대를 살았던 어우동은 사형을 당했다. 이는 유감동과 어우동을 보는 시각이 달랐음을 의미한다. 


세종대왕이 보여준 다양한 면모를 봤을 때 여러 인과관계 속에서 유감동 또한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