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사약 16잔 먹고도 멀쩡해 독주 2잔 더 마셨지만 '약빨' 안 받아 교수형 당한 선비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JTBC '인수대비'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대역부도한 죄인에게 사약을 내리노라!"


흔히 사극을 보면 사약을 마신 후 바닥에 쓰러지는 주인공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사약을 마신 주인공의 하얀 소복 위로 피가 타고 흘러 빨갛게 물들고 죄인은 목이 타들어 가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후 자신의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실제 사약을 마시자마자 피를 토하고 죽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왕과 나'


대개 사약을 마신 지인은 뜨거운 방안에 가뒀다. 온도가 높은 방안에 머물며 약발이 잘 받도록 한 것이다. 


이후 죄인은 최소 30분, 길게는 한나절 정도 고통과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 피를 토하고 죽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사약을 마시고도 죽지 않는 일도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가 조선 중기 명종 때 사약을 받은 임영수라는 관리이다. 


인사이트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MBC '구암 허준'


명종 2년(1547년) 왕은 물론 수렴청정을 한 문정왕후를 비방하는 벽서(오늘날 대자보와 같은 게시물)가 거리 이곳저곳에 붙어 많은 선비가 누명을 쓰고 죽었다. 


이를 '정미사화'라 하는데 임형수 또한 정미사화에 연루돼 사약을 받았다.


조선 시대 을사사화로 화를 당한 사람들의 행적을 모아 엮은 책 '을사전문록'에 따르면 고향 집에 머물고 있던 임형수에게 왕이 보낸 금부도사가 도착해 사약이 든 약사발을 내밀었다. 


허나 사약을 먹고도 약발이 들지 않았다. 결국 임형수는 16사발에 이르는 사약을 마시게 된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아 독주 2잔을 더 마셨지만 몸에는 어떤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약의 약발이 받지 않았던 것. 결국 임형수는 교수형으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조선 시대 사약을 받고 한 번에 죽지 못한 인물은 임형수뿐만은 아니었다. 


연산군 때 영의정 윤상필도 사약을 먹었지만 약이 듣지 않아 목을 맸고, 중종 시절 권신 이항 또한 사약을 받고도 죽지 않아 목이 졸려 죽었다. 


숙종 때 송시열 또한 사약 한 사발로 죽지 않아 3사발을 먹은 뒤 숨진 것으로 전해진다. 


사약을 먹어도 먹는 사람에 따라 그 약효는 천차만별로 나타났다. 사극 족 주인공처럼 사약을 마신 뒤 그 자리에서 바로 숨지는 일은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즉 사극 속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는 장면은 주인공의 비애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연출된 장면이라 여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