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75년 전 오늘(24일) 한국인 8천명 탄 배가 의문의 폭발로 바닷속에 '수장'됐다

인사이트영화 '우키시마호' 스틸컷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했지만 일본에는 아직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남아 있었다. 


일본은 이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을 우려했고 이에 조선인 노동자들을 조선으로 송환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심지어 이번 송환선에 오르지 못하면 영영 돌아가지 못한다는 전단을 뿌리고 승선하지 않으면 배급도 없다며 협박했다. 


조선인들은 거의 강제로 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오른 배가 우키시마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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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영화 '우키시마호' 스틸컷


우키시마호에 오른 조선인 노동자는 최대 8천여 명에 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탄 우키시마호가 폭발한 건 8월 24일이다. 


부산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는 돌연 방향을 틀었고 이어 그대로 폭발과 함께 침몰했다. 


홋카이도, 아오모리, 도호쿠 등에서 강제 징용되어 노역에 시달렸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조국으로 돌아갈 기쁨에 부풀어 있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일본은 이 사고가 미군이 깔아놓은 기뢰에 부딪혀 폭발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 측에서는 일본이 고의로 격침시켰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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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영화 '우키시마호' 스틸컷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배에는 부산으로 가는 해도가 없었을뿐더러 충분한 연료조차 실리지 않았다. 배는 부산으로 향하지 않고 일본 열도 연안을 따라 남하했다. 


또한 배 안에는 폭탄도 실려 있었다. 일본인 승무원 몇몇은 따로 보트에 탑승해 탈출하기도 했다. 


수많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증언, 역사학자들의 증거 제출, 심지어 일본 내 학자들까지 우키시마호 침몰을 '일본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는 그 어떠한 입장 표명, 진상 조사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나 사과 역시 전혀 없었다.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수천 명의 한국인에게 우키시마호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