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8월 15일 '광복절'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던 5가지 사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2020년도 어느덧 8월에 접어들었고, 오늘(15일)은 제75주년 광복절이다. 


광복(光復)은 말 그대로 빛을 되찾아온 날이다. 광복절은 일제강점기라는 긴 어둠 속에서 벗어나 다시 우리 민족이 빛을 보게 된 날이라는 의미가 있다.


또다시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 하루 쉴 수 있는 빨간 날로만 알고 그 정확한 의미를 기리지 못할 때가 많다. 


잘 알려지지 않은 광복절과 관련한 이야기 3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단지 빨간 날로만 기억하기보다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8월 15일에 만세 소리는 없었다


인사이트KBS '8.15 광복특집-기억의 재구성'


광복절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사람들이 집에서 태극기를 들고나와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다. 하지만 실제 1945년 8월 15일 만세 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광복 당일 해방된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복을 뜻한 일왕의 육성이 담긴 방송은 8월 15일 정오에 나왔다. NHK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서 라디오 보급률은 미비했다. 일본인들의 라디오 보급률은 71.8%에 달했지만 조선인은 겨우 3.7%만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다.  


해방의 순간이 전해진 건 8월 16일 아침이 되어서였다. 


일왕의 항복 방송에 '항복한다'는 표현은 없었다


인사이트항복 방송을 듣고 오열하는 일본 시민들 / Wikimedia Commons


당시 일왕의 육성이 담긴 항복 방송은 약 4분 30초였다. 이 방송에서 일왕은 미영지소(美英支蘇; 미국·영국·중국·소련)의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고 밝힌다. 


이어 타국의 주권을 빼앗고 영토를 침략하려는 것은 당초 자신의 뜻이 아니었으며 전쟁과 원자폭탄으로 인한 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더 이상의 교전은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이라며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인 이유를 전한다. 


이 방송에서 항복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유감'이란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항복이란 직접적인 표현이 없고 단어 또한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NHK 뉴스 진행자였던 곤도 도미에는 인터뷰에서 "어떤 젊은이들은 더 열심히 전쟁해야 한다는 말로 알아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해방된 후에도 일본군의 무장 해제는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사이트미군에 의해 무장 해제 당하는 일본군 / LIFE


8월 15일 여운형이 이끄는 건국준비위원회가 일본과 치안에 관련해 협의했지만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훈령을 통해 모든 권력의 이양을 금지했다.


일본은 이 지시를 받고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격분한 조선인들과의 유혈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본격적인 일본군의 무장해제는 미군이 진주한 9월 9일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면서 한반도에 남아있던 일본군의 무기와 자산은 모두 파기되거나 바다에 버려졌다. 


당시 조선의 지도자들은 일본군이 물러간 뒤 새로운 나라의 건국과 자위권 행사를 위해 '국군준비대'를 창설하려 했으나 미군정에 의해 모두 해산됐다. 


해방된 후 조선총독부에는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가 게양됐다


인사이트우리역사넷 홈페이지


해방된 조선에서 태극기가 게양된 곳은 일본의 수탈과 억압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아닌 남산이었다. 


해방 직후 일본군이 조선에서의 치안을 유지하며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45년 9월 9일 미군이 진주한 후 조선 총독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이때서야 조선총독부 건물에 걸려있던 일장기가 내려졌다. 


하지만 태극기 대신 미군정의 성조기가 게양됐다. 태극기가 걸린 건 미군정이 끝난 후인 1948년 이후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