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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전 오늘(7일),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사망한 조선의 왕자

1945년 8월 7일 오전 5시, 조선의 왕자 이우가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사망했다.

인사이트이우 왕자 / 황실황족성감


[인사이트] 성동권 기자 =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는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됐다.


미군의 폭격기 B-29에 실렸던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는 히로시마 상공 9,750m 위에서 유유히 떨어졌고 곧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리는 엄청난 폭발의 현장에는 대한 제국의 왕족이자 일본 제국 육군 중좌였던 이우 왕자가 있었다.


폭발로 인한 뜨거운 열기에 살이 녹아내린 이우 왕자는 폭발 당일 오후 늦게 발견돼 바로 해군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결국 다음 날인 8월 7일 오전 5시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패망이 불과 일주일여 남은 때였다.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인사이트황실황족성감


대한제국 황족 중 몇 안 되는 독립운동가인 의친왕 이강의 아들 이우 왕자는 1922년 11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가 1926년 4월부터 일본 육군 유년학교에 강제로 입교됐다.


유년학교에서 1929년까지 학업을 이어간 후 그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또다시 강제로 입교돼 포병 장교로 근무를 해야만 했다.


1945년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을 당시, 이우 왕자는 다 망한 일본으로 가기보다 해방 이후의 조선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이에 이우 왕자는 운현궁에 머물며 전역을 신청하기도 하고 조선에 배속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인사이트Youtube 'EBSCulture (EBS 교양)'


오히려 일본은 본토 결전을 위해 일본으로 전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우 왕자의 전출 명령이 내려지고 그의 둘째 여동생 이해원은 "지금 일본으로 가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권총을 들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결국 군인이었던 그는 명령을 어길 수 없었고 결국 여동생의 우려처럼 이우 왕자는 타지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았다.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이우 왕자는 죽은 후에도 일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이 유족의 동의 없이 그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 것.


야스쿠니 신사 측은 이우 왕자가 사망 당시 일본 국적이었다는 이유로 신으로 모시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살아생전, 일본의 것이라면 학을 떼고 싫어했던 이우 왕자는 죽음 이후에도 일본 전범들과 합사돼 혼(魂)조차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한편 그의 장례식은 1945년 8월 15일에 경성운동장에서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의 운현궁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Youtube 'EBSCulture (EBS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