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정전협정일'인 오늘(27일) 되새겨야할 '자유 대한민국' 지켜낸 6·25전쟁 3대 전투

인사이트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스틸컷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오늘(27일)은 정전협정일이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을 맺음으로써 3년 1개월간 지속된 전쟁이 멈췄다. 


이 전쟁으로 남북한 할 것 없이 한반도 전체가 철저히 파괴됐으나 우리는 남하하는 북한군과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구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흘린 피로 일군 결실이었다. 


남북의 대치가 여전한 오늘날,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고 우리의 이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흘린 피를 기억해야 한다.


정전협정일인 오늘, 북한의 침입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한 6·25전쟁 3대 전투를 알아보고 구국 영웅들과 국군 장병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되새기길 바란다. 


1. 다부동 전투


인사이트다부동전적기념관 홈페이지


6·25전쟁 발발 직후 무기와 훈련이 부족했던 국군은 연이은 패배로 6월 28일 서울, 7월 5일, 오산, 7월 24일 대전, 7월 말 목포와 진주, 8월 초 김천과 포항까지 북한군에 빼앗겼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고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어 북한군의 공세가 약해진 틈을 타 1사단이 낙동강 연안에서 전투를 벌여 6,867명을 사살하고 각종 포 23문과 탱크 10대를 파괴했다. 


인사이트다부동전적기념관 홈페이지


이 기세로 8월 12일 다부동으로 밀어붙여 북한군을 처치하고 대구로 진격하려는 북한군의 기세를 꺾었다. 


이 전투로 대한민국은 약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북한은 1만 7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만큼 치열한 전투로 꼽히며 동양의 베르됭 전투로 불린다. 


2. 인천상륙작전


인사이트인천항의 정박 중인 전차상륙함 / 뉴스1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됐다. 


UN군 해군의 주요 인사들은 작전 성공률이 5천분의 1에 불과하다며 반대했지만 맥아더 사령관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북한군의 허점을 찔렀다. 


군산에 상륙할 것이라는 미군의 가짜 정보에 북한군이 속았고 상대적으로 경계가 허술했던 인천으로 국군과 UN군 7만 5천 명은 인천으로 상륙 단숨에 서울까지 점령했다. 


인사이트인천항에 내리는 미 제7보병사단 / 뉴스1


전투는 치열했다. 국군과 UN군을 합쳐 8천여 명의 사상자가, 북은 1만 명이 참가해 5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서울을 점령한 국군과 UN군은 6·25전쟁 발발 직후부터 북한군의 공세에 밀리던 전세를 역전 시켜 북으로 진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3. 장진호 전투


인사이트장진호에서 후퇴하는 UN군 / 뉴스1


북진 통일을 앞둔 1950년 11월, 중공군은 이미 국군과 UN군의 전선 아래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그리고 27일 중공군의 기습 공격이 이뤄졌다. 


북한 장진호 부근에서 북한군 12만 명의 병력에 포위당한 미 10군단은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후퇴해야 했다. 


미 해병대 약 2만 5천여 명이 참가했던 이 전투에서 약 4천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중공군은 약 5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사이트폭파되는 흥남부두 / 뉴스1


장진호에서 철수한 미군과 함경도 일대의 국군은 흥남으로 이동해 피난민들과 함께 철수를 계획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흥남 철수'다. 


장진호 전투는 현대전에서 미국과 중국이 맞붙어 싸운 최초의 전투였으며 미국 해병대 창설 이후 가장 치열하고 성공적으로 철수한 사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