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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잔인해 다큐 촬영하다 중단됐던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일본정부가 은폐해 96년간 묻혀버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반일감정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인사이트KBS 1TV '역사저널 그날'


[인사이트] 황혜연 기자 =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현재의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반일 감정이 드높다.


국민들은 불매운동뿐만 아니라 일본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어두운 역사들까지 되짚어보며 일본의 만행을 널리 퍼뜨리는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일본 정부가 은폐해 96년간 묻혀버린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다.


지난 4월 KBS 1TV '역사저널 그날' 방송에서 다루다 너무 참혹해 녹화까지 중단된 이 사건은 다시금 회자되며 한국인의 반일 감정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인사이트KBS 1TV '역사저널 그날'


관동 대학살은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수도 도쿄가 속한 관동 지방에서 규모 7.9의 큰 지진이 일어났다. 이 자연재해는 관동 지역으로 돈을 벌러 간 수많은 한국인이 일본인 손에 학살되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관동대지진 발생 몇 시간 만에 "조선인들이 지진의 혼란을 틈타 방화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 폭동을 일으켰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기 때문이다.


조선인이 사회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는 소문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전파 속도 또한 매우 빨랐다.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군대와 경찰을 동원했다. 이는 집단학살을 알리는 신호였다.


인사이트KBS 1TV '역사저널 그날'


일본 경찰은 민간단체인 자경단을 긴급 모집해 조선인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학살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만큼 처참하게 거행돼 지옥을 연상케 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어린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죽창과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이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른 인간 이하의 만행, 그날을 증언한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학살을 목격했던 타카세 요시오 씨는 "일본인들이 6~7명의 조선인을 발가벗겨 몸체와 다리를 잡아 타고 있는 불속에 던져 넣었다"며 "나도 어렸을 때라 차마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고 폭로했다.


또 학살 목격자 시마가와 아키라 씨도 "조선인들을 때리고 차고 완전히 때려죽였는데, 참살당해 뒹굴고 있는 시체를 보니 많이 저항한 모양으로 손이 잘려 있었다"고 밝혔다.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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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역사저널 그날'


자경단의 증언도 있었다. 당시 자경단이었던 아사오카 쥬조 씨는 "죽여서 2~3일을 그대로 방치했다. 시체가 썩어서 구덩이를 파고 장작으로 덮어 휘발유 뿌린 후 태워 버렸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살에서 살아남아 증언한 학살 생존자의 인터뷰는 보는 이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학살 생존자 조인승 씨는 "일본인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여자든 아이든 상관없이 망치나 칼로 죽였다. 헛소문이었는데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증언자 야마다 쇼지 씨는 "젊은 나이의 여자가 배를 찢기고 태아가 배 내장 속에서 뒹굴었다"며 "그 여자의 음부에는 죽창이 푹 찔러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충격적인 증언에 '역사저널 그날' 진행자들은 눈물을 보였고, 스튜디오가 울음바다가 되자 결국 녹화 중단까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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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KBS 1TV '역사저널 그날'


사실 이 사건이 더 비극적인 것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조차 제대로 된 진상 규명 시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후안무치했고 한국은 게을렀다. 사건 이후 일본 정부는 진상 은폐→민간인에게 떠넘기기→가해자 불처벌→교과서 왜곡의 수순을 밟아왔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논리와 같은 방식이다.


한국 정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다. 지난 2014년 19대 국회 여야 의원 103명이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설치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했으나 결국 국회를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따라서 이제라도 '관동 대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사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관동 대지진 당시 자행된 조선인 학살의 참혹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가슴이 미어진다", "일본을 증오한다", "일본의 이런 만행이 너무 안 알려져 있어서 더 슬프다", "왜 이걸 학교 다닐 때 안 가르쳐 주냐. 세계적으로 더 알려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