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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전 오늘, 5월 18일은 광주 시민이 군부의 총칼에 맞서 싸운 날입니다"

38년 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인사이트5·18기념재단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오늘은 5천명의 광주 시민이 군부에 처참하게 희생당한 38년 전 '그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8년 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광주시민들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신군부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다.


이날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총칼로 위협하며 교문을 봉쇄한 공수부대 앞에서 시위했다. 


총칼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눈앞의 군인들이 자신들을 진짜로 해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사이트5·18기념재단


하지만 공수부대는 자신들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는 학생들을 잔인하게 구타했다. 공수부대의 잔인함에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에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고, 전남대 학생들의 시위는 '시민운동'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을 위시한 계엄사령부는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붙였다. 불순분자·간첩이라고 낙인까지 찍으며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거리에 돌아다니는 일반 시민들마저 곤봉과 대검을 이용해 잔인하게 폭행했다.


이들의 잔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계엄군은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 뒤 실제 '발포'했으며, 수백명을 사살했다.


발포는 명백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밝혀졌지만, 아직까지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사이트어제(17일) 광주 금남로에서 재현된 시민군 행진 / 뉴스1


광주 민주화 운동이 진행됐던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9일 동안, 광주에서는 약 3백명이 사망했다. 행방불명자와 부상자까지 합치면 약 5천명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두환은 광주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외부와의 연결 통로를 완벽히 차단했다. 광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시민들은 이곳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결국,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지 못했고, 전두환은 대통령이 됐다.


이후 수십여년이 지났지만 전두환은 아직까지 당시의 폭력적인 행동을 사과하지 않고 있으며, 2016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설마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느냐"며 발포 명령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