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수)

"눈을 감았는데 방금 만나고 온 남친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요"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뷰티인사이드'


[인사이트] 심연주 기자 = 사람들에게 '상상'이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이루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순간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달콤한 자유이자 권리다.


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깜깜한 어둠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인식을 시각화하는 과정이 불가능한 일종의 인식 장애를 '아판타시아(Aphantasia)'라고 부른다.


아판타시아는 '~없이(Without)'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A'와 그림이라는 뜻을 가진 '판타지아(Phantasia)'의 합자로, 흔히 '상상할 수 없는 병'이라고 부른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뷰티인사이드'


해당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시각적으로 사물을 인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이를 머릿속에서 형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이 사람들에게 눈앞에 휴대폰을 보여주면, 해당 물건이 휴대폰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휴대폰을 눈앞에서 치우고 어떻게 생겼는지 묘사하라고 하면 그 형체를 떠올리지 못하는 식이다.


영국의 한 교수가 아판타시아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에 있는 창문의 수를 묻는 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이들은 '개수'는 정확히 말할 수 있었지만 '모양'에 대해선 그렇지 않았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뷰티인사이드'


즉 모든 사물은 물론이고 특정 순간,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없다.


또한, 아판타시아 환자들이 그린 그림 역시 정확한 형태가 아닌 선과 점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어 본인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인터넷 브라우저 '파이어폭스'의 공동 설립자 블레이크 로스(Blake Ross)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뷰티인사이드'


그는 아판타시아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번 주는 내 인생에 가장 이상한 한 주입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이어 자신을 신기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오히려 상상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편 아판타시아는 전 세계 인구의 약 2.5%가 겪고 있으며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진 바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우리 뇌 속에서 상상하는 일을 관장하는 전두엽과 시각피질 사이의 신호 장애 때문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침대에 누워 '멍 때리기' 자주 하면 환각에 시달릴 수도 있다모든 사람은 오감에서 벗어나는 순간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


심연주 기자 yeonju@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