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금)

"뻥 뚫린 공간에서 '성희롱' 피해 사실을 진술해 수치러웠어요"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인사이트] 현나래 기자 = 고용노동부가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 공간'에서 대질조사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27일 공공비정규직노조 강서지회 등에 따르면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손모(51)씨와 손씨를 성희롱한 혐의를 받은 이모(60)씨가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 근로개선지도2과에서 함께 대질 조사받았다.


이곳은 근로감독관 10여명이 나란히 앉아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손씨는 아무 배려도 받지 못한 채 성희롱당한 경험을 조사와 관계없는 사람에게도 들리도록 진술해야 했다.


노동지청에서 요구했던 대질조사였지만, 손씨는 "회의실 같은 공간에서 조사할 수 없겠느냐"고 간곡히 요청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회의실은 컴퓨터가 없어 진술 조서를 받기 어렵다"며 요청을 묵살했다.


손씨는 곤란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른 감독관들은 다 자기 사건 조사 때문에 바빠서 안 들린다. 전국 노동관서가 다 그렇게 한다"는 말이었다.


노동부 규정을 살펴보면 비록 '대질조사'라고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직장 내 성희롱 신고사건 처리지침'을 보면 손씨의 요구가 묵살돼야 할 이유는 없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사안에 따라 전담 근로감독관이나 동일한 성(性)의 근로감독관이 상담과 조사를 하되 가능하면 '별도의 독립공간'에서 조사하는 등 조사자와 피조사자 간 상호신뢰관계 형성에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 것.


즉 아무리 대질조사가 따로 규정돼 있지 않더라도 진술조서를 작성하는 것은 '조사'인 만큼 별도의 독립공간에서 하고 싶다는 손씨의 요청은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손씨는 "뻥 뚫린 공간에서 성희롱 얘기를 하니까 너무 수치스러웠다"면서 "노동부가 사람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근로감독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별도의 컴퓨터와 공간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내 자리에서 조사했다"고 해명했지만, 녹취 후 따로 진술 조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한편 이씨는 손씨에게 노래방에서 술을 따르고 춤을 추라고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손씨는 청소현장 운영·감독 권한을 가진 이씨의 손을 뿌리치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나래 기자 nara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