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유도회 여자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던 정성숙 감독이 계체 대란 끝에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가대표 선수의 절박한 폭로가 결국 지도부의 허술한 대회 운영과 은폐 정황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조직을 뒤흔들었다.
지난 22일 대한유도회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및 세계선수권대회 평가회를 마친 직후 정 감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지난 13일 귀국 당일 사의를 밝힌 바 있으며, 이날 공식 평가회를 끝으로 대표팀 지도자 활동을 완전히 마무리했다.
9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아게임 유도 국가대표 미디어데이에서 공개 훈련에서 정성숙 감독이 김지수와 신유나를 지도하고 있다. 2026.9.9/뉴스1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 4일 유도 국가대표 정수진(용인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폭로였다.
정수진은 2024년과 2025년 주니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2년 연속 동메달을 획득했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생애 첫 성인 메달을 노리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그는 대회 여자 48㎏급 경기에 단 한 차례도 출전하지 못한 채 탈락했다.
초기에는 정수진이 개인 실수로 체중 조절에 실패해 실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수진은 국가망신이라는 거센 비난과 조롱을 견디다 못해 선수 생명을 걸고 진실을 밝혔다.
정수진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공식 계체를 정상 통과했고, 경기 당일 아침 무작위 추첨 계체 기준인 50.4㎏에 맞춰 음식 섭취를 조절하며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도 국가대표 정수진 인스타그램
추첨 이후 코칭스태프는 "남자 선수 1명만 계체 대상에 걸렸고 너는 해당 없다. 감량을 많이 했으니 얼른 밥 먹고 회복하라"고 말했다. 정수진이 여러 차례 다시 확인했지만 지도자들은 동일한 답변을 반복했다.
코칭스태프의 말을 믿은 정수진은 경기 회복을 위해 죽과 바나나, 이온음료를 먹으며 컨디션을 끌어올리던 중이었다.
계체 종료 15분을 앞두고 자신이 계체 대상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전달받은 정수진은 이미 먹은 음식을 억지로 토해냈고, 스스로 머리카락까지 잘라내며 필사의 감량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부족했고 단 100g 초과로 실격 처리됐다.
정수진은 "마지막 15분 동안 울면서 토하고 잘려 나간 머리카락과 무릎을 꿇고 3분만 시간을 달라며 빌었던 내 모습이 한없이 비참하게 느껴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선수에 대한 입단속 정황도 함께 드러났다. 정수진은 지도자들이 "한국에 돌아가면 책임지겠다", "이대로 마무리가 되어야 조용히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며, 협회가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개인 부주의로 탈락했다는 비난과 억측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정수진은 "선수 생활을 더 못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국가망신 낙인이 찍힌 채 운동을 이어가는 것보다 억울한 사실을 밝히고자 글을 썼다"고 덧붙였다.
선수 생명을 걸고 진실을 밝힌 정수진의 용기에 여론은 들끓었다. 유도회는 사태 직후 공식 사과문을 내고 "심각성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 귀국 즉시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규정과 원칙에 근거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정 감독의 관리 부실 논란은 이어진 세계선수권대회 출국 과정에서도 반복됐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국제공항에서 환승 비행기를 놓쳐 대표팀이 9시간 동안 공항에 발이 묶이는 일까지 발생했다.
정 감독은 귀국 당일 고개를 숙인 데 이어 22일 평가회에서 사직서를 제출하며 불명예 퇴진했다. 체육계의 폐쇄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묻힐 뻔했던 지도부의 황당한 실책과 책임 회피는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진실을 밝힌 선수 한 명의 용기 앞에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