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친일인명사전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아 사전의 등재 기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는 12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등재 기준을 상세히 밝혔다. 연구소 관계자는 "2009년 작성된 친일인명사전은 단순히 친일 행적 하나만 확인됐다고 해서 등재하지 않는다"며 "해당 행위가 얼마나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며 적극적인지를 종합 검토한 후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안상호의 경우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 소속이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다른 등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사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뉴스1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사전을 작성한 지 17년이 흘렀고, 친일 행적에 대한 추가 조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당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고 해서 친일 여부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친일 단체 가입만으로 사전에 포함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는 개정판 작업을 준비 중이다. 관계자는 "안상호뿐만 아니라 추가 등재 후보군이 수백 명에 달한다"며 "각 인물의 행적을 조사하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등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안상호의 친일 행적은 증손녀인 하영의 발언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영은 최근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4대째 의사 집안"이라며 "증조부께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고 소개했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과 함께 그의 친일 행적이 지적됐다. 1918년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 안상호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은 조금도 못 먹는다"고 말했으며, 대정친목회 회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상호 일가 / 국립중앙박물관
논란이 확대되자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증조부 안상호 선생이 1916년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며 "역사적 사실과 한 인물의 이력을 대중에 전하는 일에 얼마나 신중한 검증이 필요한지 이번 일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 배우 하영 역시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깊이 새기고, 앞으로 더욱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영도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다.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한다"며 "제가 미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역사를 외면하거나 가볍게 여길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편 13일 YTN 라디오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안상호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 언급했다.
방 사무처장에 따르면 안상호는 1909년 경성에서 열린 이토 히로부미 추모대회의 추모준비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방 사무처장은 "이 분(안상호)의 최초 친일 행적은 뭐냐 하면 1909년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하지 않았나. 그때 경성에서도 일제가 이토 히로부미 추모대회를 연다. 그때 추모준비위원회에 안상호의 이름이 올라간다"며 "1909년부터 안상호의 친일 행적은 역사적으로 밝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