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직접 담합 14.2조·경쟁제한 효과 26조 판단
정유4사 법인 재판행...전량구매계약·사후정산 관행도 기소 대상
검찰이 미국·이란 전쟁 직후 국내 정유 4사간 석유제품 가격 담합이 있었다고 보고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 부서장과 정유 4사 법인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직접 담합 규모를 14조2천억원, 시장 전체 경쟁제한 효과를 26조원으로 산정했다.
6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 부서장 A씨를 구속기소하고 책임매니저 B씨와 법무실장 C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 D씨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 4사 법인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스1
검찰이 가장 집중 수사한 곳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다. 검찰은 A씨가 2024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SK에너지 임직원과 석유제품 가격정보를 교환하고 가격정책을 논의한 것으로 봤다. 올해 3월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양사 가격결정부서 책임자들이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에 협의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두 회사의 직접 담합 규모가 14조2천억원에 이른다고 봤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의 가격 급등을 참고해 공급가를 올린 효과까지 합치면 경쟁제한 효과는 26조원으로 산정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가격 추종 행위 자체는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고 직접 담합 기소 범위에서는 제외했다.
98.6% 과점시장서 굳어진 가격 관행
국내 정유시장은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4사의 점유율이 98.6%에 이른다. 검찰은 이 같은 과점 구조에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 결정이 나머지 정유사 공급가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전쟁 직후 가격 급등이 일회성 돌출 행위가 아니라 전쟁 전부터 이어진 가격정보 교환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이 확보한 직원 대화방에는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우리 올해 2조 벌 듯"이라는 메시지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미국·이란 전쟁 발발 당시 정유사들이 상당한 원유를 비축하고 있어 국내 공급가격을 급격히 끌어올릴 사정이 크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증거를 없앤 혐의도 적용됐다. HD현대오일뱅크 법무실장 C씨는 공정위 현장조사 사실을 미리 알고 타사의 가격정보를 취합한 자료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다.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 D씨는 가격결정 회의 자료 공유를 위해 개설한 사내 메신저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다.
주유소 거래처 선택도 막았다
서울중앙지검 / 뉴스1
검찰은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도 기소 대상에 포함했다. 정유 4사는 2021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자영주유소들과 전량구매계약을 맺고,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사가 정한 가격으로 석유제품 전량을 구매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 계약 구조가 자영주유소의 가격 비교와 거래처 선택을 막았다고 봤다. 주유소가 다른 정유사나 유통 경로에서 더 싼 석유제품을 공급받으려 하면 손해배상 청구, 비용 회수, 보너스카드 중단 등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계약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정유 4사는 공급가격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사후 정산하는 방식도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 같은 구조가 정유사의 가격 결정권을 키우고, 자영주유소와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통로로 작동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국가적 혼란을 틈타 유가 교란의 중대 범죄를 범한 피고인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산업통상부 등 유관기관과 협력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정유사 3곳이 산업통상부에 석유제품 공급가를 실제 인상액보다 낮춰 보고한 사실도 확인했다. 관련 자료는 산업통상부와 공유하기로 했다. 정유사별 보고 내역과 행정 제재 검토 여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