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오는 19일 이란과의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 서명식을 기점으로 이란에 대한 강력한 원유 제재를 해제할 방침인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이란 재건을 위한 대규모 자금 조달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합의는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자금 투입 없이 민간 주도의 재건 기금을 통해 이뤄지는 형태지만, 사실상 이란에 대한 경제적 보상 성격을 띠고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16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미국과 이란의 기본 합의안에 3000억 달러 규모의 '재건개발기금' 조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미 한국을 비롯한 미국, 아시아, 중동 기업들이 절반이 넘는 1500억 달러 이상의 출자를 확약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금은 에너지, 물류, 제조업, 운송 등 이란 현지의 전쟁 피해 복구 및 경제 재건 사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이번 기금이 전쟁 배상금이 아닌 순수 민간 투자 수단임을 강조하며 정부 예산이나 보조금이 일절 포함되지 않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이란에 어떤 돈도 투자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이란에 돈을 투자해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이는 앞선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협정(JCPOA) 당시 현금 지급을 강하게 비판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내놓은 우회로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GettyimagesKorea
하지만 미국은 이란을 협상 테이블에 묶어두기 위한 실질적인 회유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우선 MOU 서명과 동시에 이란산 원유 판매를 허용하고, 이를 위한 은행·운송·보험 등 필수 서비스를 모두 제재 면제하기로 했다. 이미 미국의 해상 봉쇄망을 뚫고 이란산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가는 등 가시적인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JD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와 관련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돈은 단 1센트도 이란으로 가지 않는다"며 합의 이행 과정에서 미국이 직접 자금을 제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이란이 핵 관련 합의를 이행할 경우 얻게 될 인센티브에 대해 "이란이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할 경우 이란에 혜택이 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돈이 아닌, 아마도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의 자금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싱크탱크 '워싱턴 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파르진 나디미는 "이란의 원유 수출 허용은 미국의 핵심 협상력을 포기하는 것이지만, 백악관은 호르무즈 개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백악관은 이란의 양보를 위해 회유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란이 협상을 지속하도록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은 재건 기금 외에도 해외 은행에 동결된 이란 자산 1000억 달러 중 일부를 우선 해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 / AzerNews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의 전복을 원치 않으며, 이란이 합리적인 지도부를 갖췄다는 평가를 내놓으며 화해 무드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다만 이란 전쟁을 일으킨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 기업들을 동원해 이란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시도한다는 점을 두고 미국 내 정치권의 반발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향후 MOU가 체결되면 60일간의 세부 프로젝트 계획 수립 기간을 거쳐 본격적인 이란 재건 사업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