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12일(화)

"배 내밀고 서 있어도 못 본 척" 만삭 임신부가 출근길에 지하철서 겪은 일

서울 지하철 2호선으로 출퇴근하는 임산부 A씨는 오늘도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섰다.


만삭에 가까운 배를 내밀고 가방에 달린 임산부 배지까지 보였으나 좌석에 앉은 승객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A씨는 자리를 비켜달라는 말을 꺼내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혹시 이상한 사람을 만나 험한 소리라도 들을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위태롭게 손잡이를 잡고 버텼다.


인사이트뉴스1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임산부 배려석 비켜달라 말해본 적 있어?'라는 제목의 사연이 올라와 많은 임산부의 눈시울을 붉혔다.


두 번째 임신 중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첫 임신 때 배가 너무 아파 딱 한 번 비켜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는데, 그 길로 병원에 가서 바로 입원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었다"며 과거의 아찔했던 경험을 회상했다. 그는 매일 출퇴근길마다 서서 가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말을 꺼내기까지 수십 번 고민만 반복한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작성자가 선뜻 말을 건네지 못하는 이유는 임산부 배려석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온도 차 때문이다.


"배려하는 곳이지 전용석이 아니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여전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했다가 자칫 갈등의 주인공이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실제로 임산부 배지를 착용하고 배를 내밀고 있어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거나 자는 척하는 승객들을 마주할 때마다 작성자는 서러움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고백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게시글을 접한 네티즌들은 저마다 겪은 출퇴근길의 고충을 쏟아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남성이나 고령자에게 비켜달라고 말하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말을 꺼냈다가 '나도 힘들다'는 식의 핀잔을 들을까 봐 아예 그 근처로 가지도 않는다", "양보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시선이 임산부들을 더 위축시키고 있다"는 등의 댓글이 잇따랐다.


한 네티즌은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어도 앉지 않는 문화가 정착돼야 하는데, 현실은 늘 비임산부들로 가득 차 있다"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반면 일각에서는 강제성이 없는 '배려'의 영역임을 강조하며 소통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임신 초기처럼 외관상 티가 나지 않을 때는 먼저 말을 해주는 것이 서로 오해를 줄이는 방법"이라는 의견도 제시됐으나, 대다수는 신체적 고통이 극심한 임산부가 구걸하듯 자리를 부탁해야 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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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말처럼 배가 아파 병원에 실려 갈 정도의 긴급한 상황이 되어서야 겨우 입을 뗄 수 있는 것이 대한민국 임산부들이 마주한 서글픈 현실이다


임산부 배려석 도입 이후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지하철 안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성별과 세대를 불문하고 좌석 점유를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면서 정작 보호받아야 할 임산부들은 '서러운 출퇴근길'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국면이다.


"그냥 질러나 볼까"라며 매일 아침 용기를 가다듬는 임산부의 독백은 우리 사회의 배려 수준이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음을 시사한다. 단순히 좌석을 비워두는 것을 넘어 임산부의 조심스러운 요청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