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30일(목)

밤새 부어라 마셔라 끝났다... 주류 회사들, 이제 취기 대신 '경험'을 팔기 시작했다

과거 한국 주류 문화의 상징이었던 '심야 폭음'과 '부어라 마셔라'식 회식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Z세대가 주도하는 이른바 '데이캡(Daycap)'과 취하지 않고 분위기만 음미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트렌드다.


더 이상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지 않고, 낮이나 이른 저녁 시간을 활용해 가볍게 술자리를 가진 뒤 다음 날의 일상을 준비하는 철저히 계획적인 소비 행태가 주류 산업의 룰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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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가 "Z세대의 다음 칵테일은 오후 3시에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고 조명했듯 시간과 공간을 대하는 Z세대의 태도는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럼 브랜드 바카디의 리포트에서도 Z세대 3명 중 1명(약 34%)은 이른 저녁 음주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다음 날의 일상과 컨디션을 고려해 일찍 귀가하는 계획적인 소비 행태가 반영된 결과다.


국내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NH농협은행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20대와 30대의 주점 소비 금액은 전년 대비 각각 20.9%, 15.5% 급감했다.


반면, 국내 무알코올 맥주맛 음료 시장은 2021년 415억 원에서 2027년 956억 원 규모로 두 배 이상 팽창할 전망이다. 


술집에서 쓰는 돈은 줄이되, 일상에서 취기 없이 풍미를 즐기는 무알코올 지출은 아끼지 않는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국내 주요 주류 기업들은 완전히 새로운 문법으로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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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주류의 이색 만남... '러닝 크루' 사로잡은 라이프스타일 전략


건강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 하이트진로는 주류 소비를 스포츠 라이프스타일과 직결시켰다.


단순히 술을 파는 것을 넘어 운동 후 부담 없이 즐기는 음료로 맥주의 포지셔닝을 재정의한 것이다. 


하이트진로의 '테라 라이트'는 전국 40개 대학 소속 2,000명의 러닝 크루가 참여하는 '2026 대학러닝리그'의 타이틀 스폰서로 나섰다. 


3월 개강총회 연합런을 시작으로 4월 캠퍼스런, 5월 대운동회, 6월 종강총회에 이르기까지 촘촘하게 짜인 오프라인 행사에서 젊은 세대와 직접 호흡한다. 


2026-04-23 16 05 50.png인스타그램 'official.terra.kr'


이뿐만 아니라 2025년부터 동아마라톤, 마블런 등 8개에 달하는 국내 대표 러닝 대회에 스폰서로 나서며 건강을 중시하는 헬시플레저 족과의 접점을 공격적으로 넓히고 있다. 


"구색 맞추기용은 끝났다"... '풍미' 앞세운 제조공법의 진화


미국 더 리튼하우스 호텔의 식음료 디렉터 앤서니 아빌레스가 "무알코올 음료(목테일)는 이제 반드시 갖춰야 할 핵심 라인업"이라고 진단한 것처럼, 국내 시장 역시 무알콜이 대안품을 넘어 기호품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하이트진로그룹의 음료 계열사인 하이트진로음료는 알코올 유무를 넘어 맥주 본연의 풍미를 구현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제조 단계부터 알코올이 생성되지 않도록 설계된 비발효 공법을 적용한 '테라 제로'가 그 결과물이다. 


호주산 청정 맥아 농축액을 사용해 고소한 향을 살리고 강력한 탄산으로 청량감을 극대화하면서도 알코올, 칼로리, 당류, 감미료를 완벽히 배제한 '리얼 제로(Real Zero)' 콘셉트를 앞세워 맛과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테라 제로 / 하이트진로음료테라 제로 / 하이트진로음료


심야 회식 대신 '모닝 레이브'… 시공간을 파괴한 소비 접점 확대


오비맥주 산하 버드와이저는 저녁 시간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파티 문화를 아침으로 끌고 왔다.


논알코올 음료와 함께하는 음악 파티 '얼리 버드(Early Bud)'를 이태원 루프탑에서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열며 젊은 층의 '모닝 레이브(morning rave)' 트렌드를 공략했다.


제품 라인업과 판매망 확장도 매섭다. 알코올, 당류, 칼로리, 글루텐을 뺀 4무(無) 콘셉트의 '카스 올제로'를 선보였으며, 2025년 12월 기준 전국 약 5만 5,000여 개 식당에 카스 0.0과 카스 레몬 스퀴즈 0.0을 입점시켰다.


이는 전년 대비 약 70% 증가한 수치다. 


더불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공식 파트너로서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 '카스 0.0 응원 부스'를 열고 선수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등 시간과 장소의 경계를 허무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버드왕이저 모닝 음악 파티 '얼리 버드' / 오비맥주버드왕이저 모닝 음악 파티 '얼리 버드' / 오비맥주


어쩔 수 없는 대안에서 '적극적인 경험 소비'로의 진화


일련의 흐름은 지금의 변화가 단순한 세대적 유행이 아니라 주류 산업 구조의 거대한 변곡점임을 시사한다. 


2030 세대의 전통적인 주점 소비와 주류 구매액이 전년 대비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인 반면, 무알코올 맥주맛 음료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며 2027년 956억 원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주류 산업의 핵심 부가가치가 '알코올을 통한 취기'에서 창출되었다면, 이제는 고도화된 제조 공법이 빚어내는 '맛의 유사성'과 낮 시간대, 러닝 직후 등 특정 상황에 부여되는 '경험적 가치'로 그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소비의 총량이 단순히 증발한 것이 아니라, 소비의 '질'과 '방향'이 완전히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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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를 필두로 한 현대 소비자들은 술을 맹목적으로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날의 컨디션을 망치지 않도록 음주가 자신의 통제권 안에 머물며 일상과 시너지를 내도록 철저히 계산하고 기획한다.


'마시지 못해' 고르는 차선책이 아니라 '가장 트렌디하게 즐기기 위해' 무알코올을 선택하는 시대다. 취기를 덜어낸 빈자리를 어떤한 브랜드 경험으로 채우느냐가 주류 기업들의 향후 성패를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한 성분 대체를 넘어 소비자들의 세분화된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한 주류업계의 치열한 혁신 경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업계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