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 개편안이 자동차 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 성능·가격 중심에서 국내 산업기여도와 연구개발 투자 실적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수입차와 국산차 간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14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달 31일 공개한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7월 1일부터 새로운 지급 기준을 적용한다.
테슬라 모델Y / 테슬라
새로운 보조금 산정 체계는 단순 구매 지원을 넘어 국내 투자·고용·기술개발 기여도를 종합 평가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보조금이 국내 산업 생태계 강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다.
새로운 기준이 도입될 경우 시장 판도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와 BYD 등 수입 전기차 브랜드들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카이즈유데이터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테슬라는 전년 동기 대비 334.8% 급증한 2만 970대를 판매하며 국내 전기차 시장 점유율 25%를 차지했다.
중국 브랜드 BYD 역시 지난해 국내 진출 후 1분기에만 3968대를 판매하며 월 1000대 이상의 안정적인 판매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중국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우려를 뛰어넘으며 시장 입지를 다져왔다.
하지만 이들 브랜드는 국내 생산시설이나 대규모 R&D 거점을 보유하지 않아 새로운 평가 기준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업계에서는 이들 브랜드의 보조금이 대폭 삭감되거나 아예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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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중에서는 BMW처럼 국내 투자와 판매·서비스 네트워크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일부 브랜드만이 제한적인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국산 브랜드는 전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국내 생산시설과 연구개발 인프라, 전국적인 AS망을 모두 갖추고 있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국내 완성차 업체 간에도 희비가 엇갈린다. KG모빌리티는 '토레스 EVX'와 '무쏘 EV' 등 일부 전기차 모델만 보유하고 있어 제한적 수혜에 그칠 전망이다.
르노코리아와 한국GM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전기차 모델이 없어 제도 개편의 직접적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산 우선" vs "소비자 선택권 침해" 논쟁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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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개편을 둘러싼 찬반 논쟁도 치열하다. 찬성 측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보조금이 국내 산업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전기차 생산뿐만 아니라 배터리, 부품, 고용 등 연관 산업 전반의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국산 중심 지원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주요국들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보조금 정책을 강화하는 글로벌 트렌드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반대 측은 전기차 보급 확대라는 정책 본래 목적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비자의 구매 부담을 줄여 전기차 확산을 유도하는 것이 보조금의 핵심 취지인데, 이를 산업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소비자 선택권이 제약되고 시장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올해 초 테슬라와 BYD의 공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국내외 브랜드들이 일제히 가격을 인하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보조금 장벽이 생기면 이런 가격 경쟁 구도가 사라져 결국 전기차 수요 위축과 시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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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합리적 기준 마련" 주문…정부 수정 검토
제도 개편 추진은 국회의 견제로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국회 정책 질의에서 김성환 기후부 장관에게 "소수 특정 기업에 보조금이 집중돼 소비자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이번 평가가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배점 관련 오류를 검토해 조치하겠다"고 답변했다.
이후 이 의원은 SNS를 통해 "평가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국회에 보고한다는 내용의 부대의견을 붙여 본회의를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안은 아니지만, 김 장관이 국회 지적에 동의하고 향후 관련 내용을 보고하겠다는 부대의견이 추가된 만큼 제도 수정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정부는 자국 산업 육성과 탄소 중립, 공정 경쟁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시장 요구와 정책 목적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할 최종 수정안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