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보름 앞둔 지난달 30일, 제주한라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제주의 마음을 듣다' 현장은 한 여인의 절절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소방호스를 몸에 감고 학생 20여 명을 구해내 '파란 바지의 의인'이라 불렸던 김동수 씨의 아내, 김형숙 씨의 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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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12년 걸렸다. 저희 집에 대통령앓이를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 때문에 왔다" 어렵게 발언 기회를 얻은 김씨는 담담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남편이 참사 당일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을 구했지만, 정작 본인은 12년째 그날의 기억 속에 갇혀 있다고 전했다. 극심한 트라우마로 자해와 입·퇴원을 반복하며 약에 의지해 하루를 버티는 삶, 그것이 의인의 이름 뒤에 가려진 참혹한 현실이었다.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한 것은 남편의 고통이 두 딸에게도 대물림되었다는 사실이다.
김씨는 "아버지가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큰딸은 응급구조사 군무원이 되었고, 작은딸은 소방관이 되었다"며 "하지만 아버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진 결과, 큰딸은 림프 전이를 동반한 유방암 판정을 받아 힘든 치료를 마쳤지만 지금은 뼈로 전이된 상태이며 작은딸은 갑상선암 진단 이후 태중의 아이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두 딸은 자신의 고통보다 아버지를 더 걱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편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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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김씨는 남편이 인대가 끊어질 정도로 몸을 던져 구조 활동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공무 수행 중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한 현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 번의 신청 끝에 얻어낸 '의상자 5등급' 판정은 위로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현장에서조차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족쇄'가 되어 남편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남편은 단지 눈앞의 생명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구조한 사람보다 살려 달라 외치던 사람들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남아 남편을 괴롭히고 있다. 참사 이전에는 평범했던 저희 가족이 오히려 사람을 구조한 이후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며 "'딸 바보' 아빠 동수 씨는 자신 때문에 딸들이 아프다고 자책하고 '아빠 바보' 딸들은 아버지를 걱정하느라 치료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이 고통을 이해하고 최소한 '김동수, 당신은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며 "부디 남편이 좌절하지 않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기관에서 제도를 좀 살펴봐 달라"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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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이제 며칠 뒤면 다가올 12주기를 앞두고도 갈 곳이 없어 스스로 3평짜리 컨테이너를 마련해 홀로 추모 공간을 준비 중인 남편의 근황을 전하며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한 남자를 지켜내기 위해 세 식구가 고군분투하며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함께 달려주고 계신다. 대통령님께서 그 마지막 주자가 되어 결승 테이프를 끊어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언젠가 제 남편 김동수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장하다, 고생 많았다'는 한마디만 건네주신다면 큰 위로가 되겠다. 의인의 삶이 불행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도록, 그래서 더 많은 의인들이 한국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강조했다.
세월호의 비극 속에서 타인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던 의인 김동수 씨. 그의 가족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보상이 아니었다. 국가가 그 헌신을 온전히 기억하고 인정해 주는 것, 그리고 '사람을 구한 삶'이 결코 후회가 되지 않도록 따뜻하게 안아주는 국가의 손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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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한 의인의 안타까운 근황을 들은 이재명 대통령은 고개를 떨궜다. 현장의 국무위원들도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으며 무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형숙 씨의 안타까운 이야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밝으셔서 눈물이 난다", "꼭 대통령께서 조치를 취해주셨으면", "김동수 님은 진정한 영웅이다. 딸들과 오래오래 건강히 사시길 기도하겠다", "이제야 '김동수'라는 이름을 알았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동수 씨 같은 의인도 참 멋지지만 아내분도 정말 멋지시다. 좋은 일 하셨으니 좋은 일만 오기를 기도한다" 등 누리꾼들의 뜨거운 응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