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10일(화)

구광모 회장 승부수는 엑사원... LG, B2B AI로 다음 성장축 키운다

LG그룹이 시장의 재평가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6일 종가 기준 상장 계열사 시가총액 합산에서 한화그룹이 180조 6740억원으로 LG그룹 175조 290억원을 앞서며 4위로 올라섰다. 공정자산 기준 서열과 별개로, 자본시장이 매기는 서열은 역전됐다. 시장이 LG의 몸집보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 배경엔 포트폴리오 구조가 있다. LG는 1999년 LG반도체 주식 양수도 계약을 거치며 반도체 분야를 타 기업에 내줬고, 전선·전력기기 분야는 2003년 LS의 계열분리로 그룹 밖으로 나갔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계열 전문화 과정에서 이뤄진 선택이었다.

대한민국 산업 선진화 과정에서 이뤄진 일이었기에 단순히 LG의 일방적 실책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지금 시장이 높은 프리미엄을 주는 메모리 반도체와 전력 인프라 영역에서 LG의 직접 노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데에는 여러 복합적 이유가 있었다. 


LG는 현재 기존 주력 사업 쪽에서도 예전만큼 여유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2025년 연간 매출은 23조 6718억원으로 전년(2024년)보다 7.6% 감소했다. LG화학의 2025년 매출은 45조 9322억원으로 집계됐다. 배터리와 화학이 여전히 LG의 핵심 축이지만, 지금과 같은 시장 환경에서는 이들 사업만으로 예전 같은 밸류에이션을 되찾기 쉽지 않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인사이트


이 때문에 LG가 꺼내 든 해법은 '없는 사업을 되찾는 것'보다 '기존 사업 위에 AI를 얹는 것'에 가깝다. 구광모 회장은 2025년 신년사에서 창업 초기 'Day 1' 정신을 다시 꺼내 들며 AI·바이오·클린테크, 이른바 ABC를 미래 성장축으로 제시했다. AI를 별도 사업으로만 키우기보다 화학·배터리·가전·디스플레이 같은 기존 자산 위에 산업용 두뇌를 올려 생산성과 연구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LG AI연구원의 '엑사원(EXAONE)'이다. LG가 본지에 전달한 설명자료에 따르면 엑사원은 '모두를 위한 전문가 AI'를 표방하며 산업 현장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AI 토크 콘서트 2025'에서는 엑사원 4.0 공개와 함께 챗엑사원, 데이터 파운드리, 온프레미스 등을 묶은 생태계를 선보였다. 


챗엑사원은 현재 LG그룹 임직원 8만 명 중 6만 명이 사용 중이고, 데이터 파운드리는 실증 사업에서 데이터 생산성을 최소 1000배 높였다고 LG 측은 밝혔다. 온프레미스는 외부와 분리된 환경에서 기업용 에이전트를 구축할 수 있는 풀스택 솔루션이다.


적용 분야도 비교적 선명하다. 금융, 공공, 바이오가 엑사원의 대표 적용 축으로 제시됐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에는 금융 AI 에이전트 '엑사원-BI'가 도입되고 있고, LG CNS는 공공·금융 AX 사업에서 엑사원을 활용하고 있다. 바이오 분야에선 정밀의료 AI 모델 '엑사원 패스 2.0'을 앞세워 임상시험과 바이오마커 발굴까지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챗GPT, 제미나이, 그록 등 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AI 챗봇 경쟁이 아닌, 산업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전문가 AI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 사진제공=㈜LG구광모 LG그룹 회장 / 사진제공=㈜LG


LG전자 쪽 흐름도 이 전략과 맞닿아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B2B 매출이 24조 1천억원으로 전년보다 3% 늘었고, 전장과 냉난방공조를 맡는 VS·ES사업본부 합산 영업이익은 처음으로 1조원을 넘겼다. AI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확보도 올해 과제로 제시했다. 


LG전자는 텐스토렌트와 전략적 협업을 공식화하며 RISC-V CPU, NPU, 칩렛 등 차세대 시스템반도체 역량 강화에도 나섰다. 직접 대규모 반도체 생산 라인을 갖추는 대신, 외부 파트너와 손잡고 AI 인프라 대응력을 키우는 방식이다.


LG의 방향은 반도체와 전력기기의 빈자리를 정면으로 메우는 데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엑사원을 축으로 기존 사업의 생산성과 연구개발 효율을 끌어올리고, 이를 B2B 사업으로 수익화하겠다는 게 목표로 보인다. 


다만 시장이 궁금해하는 것은 기술 발표 횟수가 아니다. 외부 고객 매출이 실제로 얼마나 붙고 있는지, 반복 수주가 가능한지, 금융·공공·바이오에서 나온 사례가 사업 모델로 자리 잡는지가 더 중요하다. 엑사원이 '잘 만든 모델'을 넘어 '돈 버는 산업 인프라'라는 점을 숫자로 보여준다면 시장은 다시 LG를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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