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 장내 미생물이 핵심 역할
장내 미생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자폐증)의 새로운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포스텍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자폐증 발병에 관여하는 장내 미생물과 면역 반응 메커니즘을 규명했는데요.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장내 미생물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자폐증 유전자를 가지고 있더라도 자폐증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진 제공 = 포스텍
임신혁·김태경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18일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자폐증은 주로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사회성, 의사소통, 행동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이 발달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 31명 중 1명이 앓고 있지만, 현재까지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장내 미생물과 뇌의 연결고리, '장-뇌 축' 이론에 주목한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의 구성이 인지 기능과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자폐증 환자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고, 자폐증 환자의 약 90%가 위장관 질환을 함께 겪는다는 점도 이러한 연관성을 뒷받침합니다.
장내 미생물과 면역 반응의 복잡한 상호작용
연구팀은 무균 상태에서 자란 생쥐를 분석한 결과, 자폐증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장내 미생물이 전혀 없으면 자폐증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장내 미생물이 자폐증 증상 발현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더 나아가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이 뇌 속 면역세포의 염증 반응을 촉진하고, 특정 염증성 T세포가 자폐증 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실제로 염증성 면역 경로를 차단했을 때 염증이 줄어들고 자폐증 증상이 완화되는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연구팀의 설명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변화시켜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이러한 발견은 2021년 예일대 연구진이 발표한 자폐증 환자의 대뇌 백질 모양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연구 결과와도 연결됩니다.
뇌의 양쪽 반구를 연결하는 통로의 모양 차이가 양쪽 반구 간 의사소통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추정이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그 원인이 장내 미생물에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인공지능 활용한 치료제 개발 가능성
연구팀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조절하는 락토바실러스 루테리 균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균을 자폐증 생쥐에 투여했을 때, 신경 염증과 자폐증 증상이 감소하는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임신혁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 / 사진 제공 = 포스텍
임 교수는 "자폐증을 단순한 유전 질환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 조절을 통해 관리할 수 있는 면역-신경계 질환으로 바라보게 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임 교수가 창업한 스타트업 이뮤노바이옴은 이번 연구 결과를 활용해 자폐증 증상 개선을 위한 치료제 개발을 계속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유전적 접근에서 벗어나 자폐증 치료에 새로운 길을 열 것으로 기대됩니다.
장내 미생물 조절을 통한 자폐증 치료법 개발은 현재 치료법이 없는 수많은 자폐증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