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엔무브 합병, 빈그룹 지분 매각... 최태원 회장의 교차 전략
SK그룹이 두 건의 중대 결정을 동시에 추진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자회사인 SK온과 윤활유 사업을 맡은 SK엔무브의 합병, 그리고 베트남 전기차 기업 빈그룹 지분 전량 매각입니다.
단독으로도 그룹 전체의 사업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이지만, 두 건이 동시에 실행됐다는 점에서 SK 내부의 전략적 흐름이 본격적인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SK온에 수익성 입히는 전략... IPO 체질 개선 신호
SK온은 그간 공격적인 생산능력 확장과 글로벌 수주를 이어왔지만, 여전히 수익성 측면에서는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반면 SK엔무브는 윤활유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영업이익률을 유지해 온 알짜 자회사입니다.
이번 합병을 통해 SK는 SK온의 재무 부담을 덜고, 동시에 사업 시너지를 도모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됩니다.
SK 본사 전경 / 사진=인사이트
합병 이후 SK온은 단순히 배터리 셀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에너지 솔루션 중심의 종합 기술회사로 진화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IPO 일정이 다소 조정될 수는 있겠지만, 수익구조가 뒷받침되는 구조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기업가치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는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빈그룹 투자 회수... 1.3조 실탄 확보로 다음 수(手) 준비
SK그룹은 베트남 현지 투자법인 'SK 인베스트먼트 비나Ⅱ'를 통해 보유 중이던 빈그룹 지분 6.05%의 매각을 최근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매각은 지난 1월부터 이달 초까지 사전에 지정된 제3자를 상대로 장내에서 분할 매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매입자와 거래 조건은 비공개지만, 업계에서는 전체 매각 대금이 최소 1조 원, 최대 1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번 매각으로 거액의 현금을 확보하게 됐으며, 이를 통해 향후 미래 투자 여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SK는 단기 수익성보다, 장기 전략에 맞는 투자자산의 구조 조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빈그룹 지분 매각은 단순한 철수가 아니라, 그룹의 핵심 사업에 보다 집중하기 위한 자산 리밸런싱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입니다. SK그룹 관계자는 "투자 대상의 사업성과 성장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 / 뉴스1
향후 이 자금은 배터리 소재, 전력망, AI 기반 솔루션 등 SK그룹이 설정한 '넷제로(Net Zero) 기반 포트폴리오'에 전략적으로 투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조는 유연하게, 위험은 '분산'... SK의 미래 설계
이번 합병과 매각은 모두 단기적인 재무 성과보다는 장기 전략에 방점을 둔 조치로 해석됩니다. SK그룹이 그동안 강조해 온 ‘유연한 사업 구조’와 ‘지속가능한 성장 시스템’ 설계가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 같은 방향성은 최태원 회장이 지난 수년간 반복적으로 강조해 온 발언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2021년 말 사장단 회의에서 최 회장은 "조직은 시대 변화에 따라 계속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은 이 같은 인식 아래,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설계하고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고려한 구조 개편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현장에서는 "배터리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SK온의 사업모델을 단순한 제조에서 벗어나 에너지 솔루션 기반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이 여기서 비롯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2023년 SK CEO 세미나에서는 "모든 자산은 다시 배분될 수 있어야 하며, 그 타이밍과 방향이 핵심"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빈그룹 지분 매각을 통해 1조3000억 원 규모의 실탄을 확보한 이번 조치는 자산 유연성을 확보하고 그룹의 투자 구조를 재정비하기 위한 수순으로 읽힙니다.
2024년 다보스포럼에서 기자단과 만나서는 "지금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늦더라도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SK온의 IPO 일정을 늦추고 합병을 통해 내실을 먼저 다진 이번 판단의 배경과 연결됩니다.
이처럼 최 회장의 메시지들은 일관되게 ‘즉각적인 성과보다도 구조 설계를 통한 장기적 지속성’을 강조해 왔으며, 이번 두 결단은 이를 현실화하는 구체적인 실행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제공=SK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