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회장, 9년 만에 모든 혐의 무죄 확정
대법원이 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이번 판결로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13명도 전원 무죄가 확정되면서, 삼성그룹은 2016년 국정농단 수사부터 시작된 9년간의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재용 회장과 삼성의 법적 승리를 넘어 한국 경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화두'를 던졌는데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뉴스1
결국 검찰의 무리한 수사 및 기소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 활동을 장기간 제약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유발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의 정당성과 절차적 합리성 논란
앞서 이재용 회장 사건과 관련해 수사 초기부터 절차적 정당성 등 많은 지적이 제기되었습니다.
검찰은 이 회장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사유 불충분'으로 기각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검찰의 자문기구인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10 대 3이라는 압도적 비율로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기소를 강행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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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과 2심 재판부는 제기된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특히 항소심에서는 검찰이 제시한 229건의 증거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무죄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새로운 증거나 상황 변화 없이 대법원까지 상고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검찰의 과도한 성과주의와 정치적 고려에 따른 '무리한 기소'가 도마위에 오르며 '검찰개혁' 논의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진 9년의 리더십 공백
이 회장이 9년간 100차례가 넘는 법정 출석을 하며 삼성은 심각한 리더십 공백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기술 산업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뚜렷한 불이익으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와 인재 확보에 나서는 동안,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해 5월 삼성전자가 독일 AI 냉각기술업체 플랙트를 2조 원에 인수한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조 단위 M&A였습니다. 이는 그동안 삼성의 경영 활동이 얼마나 제약받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AI 혁명의 물결 속에서 적극적으로 시장을 선점하던 시기에, 한국의 대표 기업은 법정 공방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습니다. 이는 기업 차원의 손실을 넘어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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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검찰 상소권 제한과 한국의 현실
국가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는 대표 기업을 대상으로, 그것도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을 끝까지 상고하는 경우는 해외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이중위험금지(Double Jeopardy·더블 제퍼디) 원칙에 따라 형사사건에서 1심이든 2심이든 무죄가 나오면 검찰이 항소할 수 없고 일본은 '정밀사법'으로 기소 자체를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법치주의 하에서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원칙을 지키는 동시에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에게 불확실한 사법 리스크를 장기간 부과하는 것은 결국 국가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미래를 위한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
이제 삼성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등 50조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품목관세 부과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큰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이 언급한 "삼성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닌 현실적 위기 인식을 반영합니다.
지난 3월 20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강남구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에서 열린 청년 취업 지원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 앞서 마중 나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는 모습. 2025.3.20/뉴스1(공동취재)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지난 3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되고, 삼성이 잘살아야 삼성에 투자한 사람들도 잘산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경제 상황이 어려운 것과 관련해 "대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 회장에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삼성이 경제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기업의 성장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기업에 대한 수사 및 기소는 더욱 신중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또 검찰수사심의위원회와 같은 외부 통제 장치도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등 제도 개선 논의도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