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수업 자료에 '경제발전 위한 계엄' 옹호 논란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수업에서 사용된 학습 자료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를 경제발전과 연결해 정당화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3일 MBC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수업에서는 신문 형태의 학습 자료가 사용됐다.
1972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를 첫머리에 실으며 '경제발전 과업 수행에 강력한 통치력 필요'라는 제목을 달았다.
MBC
문제가 된 기사에는 "10년 이후의 긴 시간을 두고 해내야 하는 중화학공업 육성에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경제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비상계엄과 같은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수업을 들은 자녀의 반응에 한 학부모는 "경제 발전을 위해서 계엄을 한 일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하는 내용들을 아이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교육 자료
역사학자들은 이 자료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세운 명분에는 '중화학공업 육성'이 포함되지 않았다.
해당 자료의 근거로 사용된 책에는 '4·19 혁명 후 집권한 민주당 정부가 파벌 다툼을 벌여 1961년 비상계엄에 빌미를 줬다'는 뉴라이트 역사관의 논리도 포함되어 있어 역사 왜곡 논란을 더하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문제의 학습 자료는 한 초등학교 교사 모임이 제작해 온라인 학습자료 사이트에서 공유되고 있으며, 호응도가 높아 여러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잘못된 역사 인식이 교육 현장에서 확산될 우려를 낳고 있다.
수업을 진행한 교사는 "그 시대로 돌아가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됐고, 박정희 정부의 독재나 계엄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은 초등학생들에게 반헌법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비판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초등학생에게 사실도 아닌 내용들, 유신을 합리화하는 내용들을 가르치는 건 우리 교육 지침에 어긋난다"며 비판했다. 또한 "초등학생에게 어떻게 그런 걸 비판적으로 보라고 할 수 있느냐"며 교육 방식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해당 자료를 제작한 교사 단체는 논란이 불거지자 "계엄 옹호는 의도치 않았던 부분"이라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당장 수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