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규 애국지사 / 뉴스1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오성규 애국지사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13일 오성규 애국지사는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함께 김포국제공항 입국장을 나온 애국지사는 역사 어린이합창단과 시민들이 흔드는 태극기에 손을 흔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해병대에서 복무 중인 표지훈 병장(블락비 피오)과 학생 대표들이 건넨 꽃다발을 받았다.
이어 역사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광복군 제3지대가를 불렀다. 이후 그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이 묻힌 서울 현충원이었다.
오성규 애국지사 / 뉴스1
자신이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뜻을 상관이었던 김학규 장군에게 신고하기 위함이었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에서 비밀조직망을 만들어 항일운동을 펼쳤다.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1945년 5월 한미합작 특수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광복군은 3개 지대를 갖추고 있었다. 김원봉 지대장이 이끄는 제1지대, 이범석 지대장이 이끄는 제2지대, 그리고 김학규 장군 이끄는 제3지대다.
제3지대는 미국의 첩보 기관 전략사무국(OSS)과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계획에 따라 국내로 침투하는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중에 광복을 맞았다.
김학규 한국광복군 제 3지대장 / 국회방송
제3지대장이었던 김학규 장군은 조선혁명당 중앙위원과 조선혁명군 참모장을 지내다 중국 관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합류, 한국광복군 제3지대장을 맡았다.
조선혁명군 참모장 당시에는 영릉가 전투와 통화현 전투에 참가, 제3지대장으로 임명된 뒤에는 대일선전· 초모공작·정보수집을 지도하는 한편 유격전을 전개해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 공을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오성규 애국지사 / 뉴스1
환영 행사를 마친 오성규 애국지사는 김학규 장군 묘역을 찾아 거수경례로 환국 신고를 했다.
100세의 오성규 애국지사는 "그동안 찾아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저도 아마 김학규 선생님한테로 갈 겁니다. 그때 사랑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광복 이후에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오늘에서야 영구 귀국했다.
이미 자녀들이 장성해 일본에 살고 있음에도 한국으로 돌아온 오 지사는 그 이유에 대해 "일본에서 죽을 수는 없다. 자기 나라에 와서 죽어야지"라고 했다.
오성규 애국지사 / 뉴스1
오성규 애국지사는 지난 2018년 배우자와 사별한 후 아파트에 홀로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생의 마지막은 고국인 대한민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훈부는 이 소식을 접한 후 박민식 장관이 직접 일본 도쿄로 가서 오성규 애국지사를 모셔 오기에 이르렀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일본에 머물던 마지막 애국지사였다.
오성규 애국지사가 국내로 영구 귀국하면서 국내 거주 독립유공자는 8명으로 늘었다. 국외 거주 독립 유공자는 미국에서 거주 중인 이하전(건국훈장 애족장) 지사만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