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747번 급행 버스 / 뉴스1
[인사이트] 지미영 기자 = 위기의 순간에도 승객 구조에 최선을 다했던 오송 747번 버스기사의 발인이 엄수됐다.
19일 오전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희생된 버스기사 A씨의 발인식이 진행됐다.
앞서 지난 15일 A씨는 청주시 미호강 범람으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버스에 급류가 밀려들자 창문을 깨고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으나, 정작 본인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안치실 앞에서 A씨의 관을 마주한 유가족들은 입을 틀어막으며 눈물을 쏟았고, 90대 노모는 운구차에 실린 아들 A씨의 관 위에 엎어져 "아들아 어디 가냐. 날 두고 어딜 가"라며 목놓아 울었다.
747번 급행 버스 / 뉴스1
원래 택시기사였던 A씨는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던 친구 최씨의 추천으로 10년 전 같은 회사에 입사했다.
궂은일을 도맡아서 했던 A씨는 금세 회사에서 인정받았고, 전국 단위 승객 안전 최우수 평가까지 받으면서 베테랑들만 몬다는 747번 버스의 운전대를 잡게 됐다.
최씨는 "747번 버스는 외지인들을 싣고 청주공항과 오송역 사이를 오가는 노선이라 회사의 얼굴과 같은 버스였다"라면서 "그 버스는 그가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게 죽음으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747번 급행 버스 내부 / 뉴스1
이어 그는 "침수된 도로를 피해 지하차도로 들어갔다고 그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이만큼 승객 안전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걸 알아달라"라고 하소연했다.
A씨의 친형 이씨는 "동생이 아내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 버스에 물이 들어차고 있다며 혹시 모를 작별 인사를 했다더라"라며 "미호천이 넘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는데 당국이 왜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지인들을 하나같이 A씨를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쉬는날에 학생들의 등굣길 안전을 책임졌고, 1년에 한 번씩은 장애인들과 노인들을 자기 차에 태우고 전국 여행을 시켜줬다고 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A씨의 35년지기 친구 김씨는 "친구들의 가족도 자기 가족처럼 챙겼던 사람이었다"면서 "명절마다 빠지지 않고 우리 집에 와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고, 내가 일이 있어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땐 대신 우리 어머니를 찾아 보던 사람"이라고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다른 친구 김씨는 "사고 당시 친구가 승객들에게 창문을 깨드릴테니 탈출하라고 했다던데, 그 사람은 정말로 승객들이 다 나가는 걸 보고 제일 마지막에 탈출했을 사람이었다"라면서 "죽을 걸 알면서도 그러고 있었을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 가슴이 미어진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14명이 숨졌고, 이 버스에서만 운전자 A씨를 포함해 9명의 희생자가 나왔다.